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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Sep 06. 2020

중년이라는 농담

중년은 벼슬도 아니고, 형벌도 아니니까.

삶이 나를 희롱할 때가 있다.

희죽희죽 한 모습으로 말을 걸어온다.


"너, 이제 중년이다?"


아뿔싸.

벌써? 나는 손목이 아닌 마음의 시계를 되돌려, 가장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곤 순식간에 지금의 나를 인식한다. 그 어렸을 때의 기억과 지금의 나 사이엔, 아무것도 있지 않다. 분명 나에겐 삶의 회로애락이 있었을 텐데. 그 어떤 것도 지나간 것들의 생생함은 찾을 수 없고, 나는 그저 지금의 배고픔이 전부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이 나에게 희롱하며 던지는 말.

농담의 농도는 진하다.


로마의 학자인 카케로는, "농담하는 태도는 헤프거나 지나치지 말고 우아하며 재치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가만있어 보자. 삶이 내게 던진 농담엔 그러고보니 '재치'가 없다.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 있을까. 야비함과 무례함, 고약함과 추잡함이 있을 뿐. 고상함과 우아함, 현명함을 담은 재치는 찾아볼 수 없다. 그 농담을 받아야 하는 건 다름 아닌 나이므로, 대책 없이 희롱을 당한 나는 유쾌하지 못하다.


어떤 이는 자신이 중년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이미 노년으로 접어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이에 있는 나는 이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거짓말처럼 다가온, 누군가의 장난과도 같은 지금의 시간들을 어떻게 수습하고 매듭지어야 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중년은 꼭, 방금 시작된 농담과 같다.

나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는.


삶이 나에게 툭 던진 농담의 크기가 작지 않고, 재치가 없어 뻑뻑하지만 어찌 되었건 나는 내 삶을 살아 내야 한다.

나는 중년이라는 타이틀이 그저 나이로 규정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그 어떤 마음의 요동이 있고, 마치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고 있기를 기다리는 인디언과 같이 삶의 내달림 속 그 어느 지점에 우두커니 선 자신을 발견하는 그 순간.


중년은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누군가는 중년을 안정적이라 말하고, 또 누군가는 중년이 한창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그 의견들을 정중하게 사양한다.

안정적 일지, 한창일 지는 내가 느끼고 내가 정하는 것이다. 중년이라는 이름에 갇혀, 중년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는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다.


중년이 중년답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중년이 중년다워야 한다는 기준은 누가 만들었는가.


중년이라서 이러해야 하고, 중년이라서 저러해야 한다기 보단.

나는 그저 먹고사는 것에 열중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전형적인 중년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나의 걸음을 한 걸음 더 내딛는 것.

그러함으로, 나는 삶에게 역으로 농치고 싶다.


그러니, 나는 내 삶에 고한다.


개그는 개그 일 뿐.

그리고, 농담은 농담일 뿐.


그 정도면 되었으니, 그저 각자를 응원하자고 말이다.

서로의 농담에 그저 한 번 씨익 웃어주며.




중년은 벼슬도 아니고, 형벌도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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