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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ug 25. 2020

중년, 애매함을 허용할 것

그로 인한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거 참 애매하다.

20대의 젊음은 사라지고 30대의 열정은 사그라드는데, 한 살이라도 많은 누군가는 나에게 한창이라 말한다. 나이가 들면서 삶은 더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날을 가늠해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나온 날들이 선명하게 내 발목을 잡고, 눈을 감은 것 마냥 앞은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이것인지 저것인지 분명하지 못한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


'장년(壯年)'과 '노년(老年)' 사이.

중년의 태생은 이처럼 애매함 그 자체다. '불혹'이다 '지천명'으로 과대 포장된 이 나이는 떳떳하지 못하다. 그 떳떳하지 못함은 애매한 데에서 온다. 태생이 애매한데, 어찌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나는 그 명칭이 '반어법'이라 믿는다.

한창 이리저리 흔들릴 나이이니 '혹하지 말라'는 경고, 그 나이 먹도록 하늘의 뜻을 알지 못할 수 있으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라'는 꾸지람.


때론, 그 경고와 꾸지람으로 밥 먹지 않고도 배가 부를 정도다.


돌아보니 과연 그렇다.


머뭇거려야 할 때 나아가고, 나아가야 할 때 머뭇거렸던 삶.

수그려야 할 때 질러버리고, 질러버려야 할 때 수그렸던 선택.

쉬어가야 할 때 달려 나가고, 달려 나가야 할 때 주저앉아 쉬던 우매함.


이러한 불균형은 왜 일어나는가.

모든 것이 다 애매함의 결과다.

모든 것이 다 후회의 단초다.


그러나 나는 애매함 속의 나를 부정하지 않기로 한다.

분명하지 못한 것은 내 삶과 선택일 뿐, 나 자체가 애매한 건 아니다. 여기, 숨 쉬는 내가 있고 생각하는 내가 있으며 글 쓰는 내가 있다. 나 자체가 애매했다면, 나는 삶을 애매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실재하기에 애매함을 말할 수 있고, 애매함을 느낄 수 있기에 나는 실재한다.


세상은 온갖 불균형으로 돌아간다.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도 불균형하게 움직이고, 지형이 불균형해야 물도 흐른다. 기차의 바퀴도 불균형하게 연결되어야 앞으로 나아가고, 톱니바퀴도 서로의 불균형을 맞대어 돌아간다.


애매함 속엔 불균형이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정작 나는 나도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를 괴롭히는 가장 큰 힘은 애매해선 안된다는 스스로의 강박관념이었다는 결론이다.


애매하지 못하면 오히려 부러질 수 있다.

더불어, 오늘도 내가 한 걸음 나갈 수 있던 건, 분명 애매함 속의 그 어떤 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 더 나에게 애매함을 허용하려 한다.

그로 인한 모든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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