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르담 Oct 03. 2020

모두가 사춘기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게 사춘기니까.

내 삶, 그러니까 각자의 그 무게가 가장 무겁다고 나는 믿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게 내 삶이며, 그 누구도 그 무게를 덜어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 무게를 더하면 더했지 그것을 가벼이 해줄 수 없다. 잠시 잠깐의 친절이, 사랑이 내게는 그 무거움을 덜어내주는 것 같지만 친절에 대한 더 큰 기대와, 사랑에 포함된 이별을 맞이할 때 삶은 잠시 잠깐 가벼워진 것보다 더 큰 무게가 되어 돌아온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삶은 평온하지 못하다.

행복하고 기쁜 '순간'은 있을지 몰라도, 삶의 전반은 가볍지가 않다. '나이'라는 숫자가 그 무게를 증명한다. 숫자가 올라갈수록, 삶의 무게는 올라간다. 체중계로는 측정이 안 되는 나잇살은 덕지덕지 붙어 온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고, 중력의 힘은 더 커져 아무리 허리를 꼿꼿하게 펴봐도 키는 줄어든다. 서럽지 아니할 수가 없다. 정말.


그런데 어쩐지 마음은 더더욱 팔랑거리는 느낌이다.

나이가 들면 덜 흔들릴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면 중심을 잡을 줄 알았는데. 이리저리 날리는 마음엔 무게감이 없다. 어차피 삶이 무거우니 마음이라도 가벼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문제는 그 마음의 무겁지 아니함이 경쾌하지 않다는 데 있다. 즉, 경쾌한 가벼움이라면 삶의 위로가 되겠지만 이 무겁지 아니한 마음의 무게는 철이 없다는 자괴감에 가깝다.


방황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어차피 왜 태어났는지 모르고, 왜 바스러져야 하는지 모르는 삶이니. 어쩌면 우리 삶은 방황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방황은 지랄 맞다. 그래야 한다. 지랄 맞게 흔들려봐야 제자리를 찾아간다. 돌이켜보니, 지랄 맞은 건 내 마음이었다. 지랄은 가벼움의 표상이다. 내 마음의 무게가 지랄 맞음의 그것과 상통한다.


내 몸과 사회적 역할은 삶의 무게에 저당 잡혀 있다.

흔들려선 안된다.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러니 가벼운 그 마음이라도 가볍게 흔들려야 하는 게 아닐까. 


아, 이제야 알았다.

가벼운 마음은 철이 없음이 아니라, 무거움에 찌든 나를 구원하려는 마음의 발버둥이었음을.


흔들려도 좋다고 생각해본다.

무겁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달래 본다.


항상 사춘기라 해도 좋다.

모두가 사춘기임을 나는 이제야 눈치챈 것이다.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는 게 사춘기니까.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VOD)

스테르담 글쓰기 클래스(오프라인/온라인라이브)

스테르담 인스타그램


[저서 모음]

'견디는 힘' (견디기는 역동적인 나의 의지!)

'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 (알지 못했던 네덜란드의 매력!)

매거진의 이전글 삶을 흘려보내야 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