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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Nov 22. 2020

애쓰지 않아도 생겨나는 것들에 대하여

애쓰지 않아도 생겨나는 것들에 조금이라도 덜 휘둘릴 수 있다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말을 배울 때, 들으면 식겁해할 말이 몇 있다.

당장 떠오르는 건 '엄마손 파이'와 '애쓰다/ 애먹다'란 표현이다. '엄마손 파이'라니. 엄마가 만들어 주신 파이가 아니라. 식겁하고도 남을 표현을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어 그 이상함을 알지 못한다.


'애쓰다/ 애먹다'란 표현도 마찬가지다.

'애'를 쓴다니. 더 나아가 '애'를 먹다니. 미국 NYPD가 출동할 일이다.


그러다 문득 애쓰며 살아온 지난날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얼마나 많은 애를 쓰고, 얼마나 고되도록 애먹은 날들이 많았던가. '애'는 말 그대로 '마음과 몸의 수고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무언가가 되기 위해, 무언가를 갖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낮과 밤을 애쓰고, 마음과 몸을 갈아 말 그대로 애먹으며 살아왔다.


그 '애'가 결실을 맺으면 '성취'가 된다.

반대로, 아무리 애써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은 '상처'가 된다.


그러다 문득, 내가 애쓰거나 애먹지 않아도 생겨 나는 것들이 떠올랐다.

'질투', '욕심', '결핍', '불안', '걱정', '초조', '분노'... 가꾸지 않아도, 누군가 돌보지 않아도 자라나는 잡초처럼 그것들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겨난다.


그런데, 애써서 이룬 것들보다 애쓰지 않아도 생겨나는 것들에 나는 더 휘둘리고 만다.

'기어이' 애써 만든 평온은, 애쓰지 않아도 생겨나는 것들에게 '기어이' 흔들리거나 깨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삶은 왜 이렇게 설계되어 있는 걸까? 애쓰지 않아도 돈이 생기거나, 마음의 평안이 솟아나면 왜 안 되는 것인가?


삶은 애쓰지 않아도 억울하다.

왜 태어났는지 모르겠는 삶은 그 시작부터가 불공평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쓰고 애먹는 것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내가 얻은 '성취'는 무엇이고, 내가 받은 '상처'는 무엇인가?


애써 질문을 던지지만, 질문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답에 애써 신경을 곤두세우지 말자고 생각한다.


일종의 체념이다.

결국, 무엇에 애를 쓰고 어떤 것에 애먹지 말아야 하는지는 내 삶의 몫이다. 제 풀에 꺾여 결국, 애쓰지 않아도 생기는 것들에 대하여 불만을 늘어놓기보단 그것들을 돌아보기로 한다.


아마도, 애써 돌아보면 그것들이 생겨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은 애먹을 일이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애쓰지 않아도 생겨나는 것들에 조금이라도 덜 휘둘릴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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