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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3. 2020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마법의 주문

글쓰기는 쉬운 게 아니고 너도 나도 괴롭다.

글쓰기에 짓눌릴 때


나를 위해 시작한 글쓰기인데, 그것에 내가 짓눌릴 때가 있다.

사실, 글쓰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쉬운 것이었다면 글쓰기의 의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유명한 전업 작가들을 떠올려보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담배를 뻑뻑 피거나, 글이 안 써져서 이리저리 방황하고 한껏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모습이 떠오른다. 또는 자신만의 루틴을 만들어 글쓰기와의 균형을 가까스로 맞추고 있거나.

작가들에겐 표현하고 싶은 욕구와 욕망이 있는데, 사실 표현해내거나 결과물로 나오는 건 지극히 부분에 불과하다.


즉, 글쓰기는 쉬운 게 아니고 너도 나도 괴롭다는 말이다.


그러나, 글 쓰는 모든 사람은 그것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잘 안다.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글쓰기의 위로와 순기능을 몸소 느끼고 있다. 우리는 글쓰기를 갈구하고 그것에 푹 빠지길 꺼려하지 않는다. 괴로움을 기꺼이 자처하는 모습. 중독이라 불러도 과하지 않다.


그러기에 쉽지 않은 이 과정에, 많은 사람이 도전하고 넘어지고 울고 웃는다.

꼭 전업작가가 아니더라도 뭐라도 써야 한다는 소명에 이끌려 오늘도 누군가는 펜을 들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다.

나는 그 과정에 도움이 되고 싶고, 용기를 주고 싶다. 이 응원은 꼭 다른 사람을 위한 것만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이 말을 가장 먼저 듣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꾸준한 글쓰기를 위해 응원이 필요한 건 나 또한 예외가 아닌 것이다.


그러니, 글쓰기에 대한 내 응원은 말 그대로 (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마법의 주문


꾸준하지 못했던 내가 그나마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자 비결.

나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글쓰기 강의를 하면서 그것들을 떠올린다. 나도 모르고 있던 그 방법들은 수강생분들을 응원하는 과정에서 표출된다. 알려주고 나누면 더 많은 걸 얻는다는 사실을 또 한 번 깨닫는다.


그래서 글쓰기가 잘 되지 않을 때 떠올리는 말을 정리해본다.

수강생 분들에게도 자주 강조하는 것들. 말 그대로 '꾸준한 글쓰기를 위한 마법의 주문'이다.


첫째,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


우리가 글을 기록하고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건, 다름 아닌 인정 욕구를 따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은 인정 욕구를 채우며 자아실현을 한다. 그 과정에선 어김없이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그 영향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바로 '생산물'이다. 다른 말로 '콘텐츠'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영향력을 선하게 만들 것인지 아닌지는 만드는 사람의 것이자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퇴근하고 집에 와 씻기도 귀찮을 정도로 축 늘어져 있을 때.

나는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나누는 삶'을 떠올린다. 즉, '힘들지만 글 쓰자'가 아니라 뭐라도 '생산'하자는 의지를 앞세우는 것이다. 소비적으로 사느라 회의했던 옛 삶을 돌아보면서, '생산'이란 말에 벌떡 일어나게 된다.


(현실적으로) 내가 지금 당장 가장 잘 생산해낼 수 있는 것, 바로 '글쓰기'.

나의 생산물이 누군가에게 가닿아 그것이 선하고 강한 영향력으로 안착하길 바란다. 나로 인해 어느 한 분이라도 더 글쓰기를 시작하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씻기도 싫을 만큼 힘들었던 나는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여러 편의 글을 생산하게 된다.


둘째,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


'작가(作家)'란 한자를 풀이해보면 '자신의 집을 짓는 사람'이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책을 낸 사람을 작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책을 낸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저자'다. 책을 낸다고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란 말이다. 글이 모여 책이 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글쓰기 초반에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남이 알아주지 않는데도 계속 쓰는 일이다.

사람은 참 묘하다. 처음엔 일기 수준으로 만족하다가 어느새 시간이 지나면 결국 누군가에게 그 글을 내어 보이려 한다. 더 나아가 인정까지 받고 싶어 하는 걸 보면, 사람은 말 그대로 평생 연구대상이다.


처음엔 자신의 글쓰기가 부끄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 구독자수와 조회수를 운운하며 그것들을 가장 큰 고민으로 손꼽는다.

이럴 때 내가 건네는 말이 바로, '작가라서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다'란 문구다. 우리가 우리만의 감정을, 세계를, 통찰을 하나하나 쌓아 갈 때. 그러니까 우리만의 집을 지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작가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남이 알아주는 글을 쓰는 건 다음 단계다.

우선 써야 한다. 작가가 되어야 한다. 누가 붙여주는 타이틀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씀으로써 작가란 호칭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결국 '글'로 자신이 작가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놓는 것이다.


하얀 여백을 채우려 할 때.

나의 완벽함과 다른 누구의 기대를 채우려 할 때. 글쓰기는 어김없이 멈춘다.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 전.

나의 마음을 먼저 바라보는 이유다. 더불어, 내 휴대폰에는 일상에서 한숨과 함께 내어 놓은 글 제목들이 한가득이다. 모두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온 소재들이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가 아닌 내 것들이다. 나는 메모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제목들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내어 놓은 감정과 생각들이 오롯하기 때문이다. 돈 주고도 사지 못할 그야말로 보물 같은 흔적들.


'글쓰기는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어놓는 것이다'란 말을 떠올리면.

나를 괴롭히는 글쓰기를 멈출 수 있다. 나를 괴롭히고, 나를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어 만들어 내는 글이 때로는 필요하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글쓰기는 멈추게 된다. 아니, 멈추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글쓰기라는 의미가 퇴색되기에 더 무섭다.


내 안에는 생각보다 내어 놓을 게 무궁무진하다.

내가 나의 마음을,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누가 들어줄 것인가?


글쓰기가 잘 되지 않을 땐, 다그침을 멈추고 경청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에게.




이밖에도 나는 '책 한 권 낸다고 인생 바뀌지 않습니다. 인생이 바뀌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렇다. 책 한 권 내는 게 소원이었던 내가 여러 권의 책을 냈고 베스트셀러도 만들었지만 더 중요한 건 '글쓰기를 통해 바라보는 내 삶'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 출간만을 목표로 하거나, 책을 냈다고 글쓰기를 멈추면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응원법은 바로 '함께 쓰기'다.

'이렇게 써야 한다, 저렇게 써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울림이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고 글을 써 나가는 것.


그리고 글쓰기가 막힐 때 위 마법의 주문을 함께 떠올리며 응원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꾸준한 글쓰기를 이어가는 비결이자, 또 내가 바라는 '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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