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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27. 2020

자존감 떨어질 때 하면 좋은 것들

떨어진 자존감은 누가 주워 주지 않는다.

자존감은 자주 떨어진다.

그것을 주워 내는 게 어쩌면 삶의 숙제인지도 모른다. 어느새 이리 많은 자존감이 떨어졌는지. 또 얼마나 더 깊은 곳까지 떨어질는지 모르는 순간순간이 바로 우리의 하루인 것이다.


그러나 자존감은 그 누구도 건드린 적이 없다.

떨어지는 자존감은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나는 지금껏 이보다 강력한 콜라보를 본 적이 없다. 어느 음악프로그램의 여러 가수가 모여 좋은 무대를 만들어냈다고 한들,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의 퍼포먼스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대부분의 자존감 하락은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미련으로부터 온다.

그 미련은 곧 내 탓으로 이어진다. 놀라운 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까지 내 탓이 된다. 왜 이모양으로 태어났는지, 왜 나는 조상덕을 못 보는지, 우리 집안은 왜 수 조원의 자산가가 아닌지 등. 내가 할 수 없는 걸 해내겠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걸 아프게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더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떨어지는 자존감을 하나 둘 주워 담는다.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떨어진 자존감을 주워낼 때 하면 좋은 것들을 곱씹는다.


첫 번째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 보기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땐 그저 좀 모자란 사람이 계속해서 뛰는 영화로 각인되었다. 그땐 어렸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마주하는 포레스트 검프는 자꾸만 새로운 질문과 자극을 안겨다 주었다. 볼 때마다 눈물이 차오르고, 벅찬 감정이 요동하는 건 중년이라 나타난 호르몬 작용 때문만은 아니다. 운명과 숙명 그리고 의지를 갖고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말 그대로 때론 바보 같이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

바보 같은 자신을 자책하기만 했는데, 돌아보니 바보 같이 살았던 흔적이 지금은 오히려 더 반짝이고 있음을 이제야 겨우 알아채고 있는 것이다. 인생은 어떤 맛일지 모르는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말과 영화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깃털은, 팔랑이는 우리네 인생을 말하면서도 또 얼마나 새로운 일을 맞이하게 될 지에 대한 희망을 넌지시 던져 준다.


둘째는 역시나 '글쓰기'다.

간혹, 나는 글쓰기를 왜 이리 늦게 시작했나 오히려 자책하는 아이러니를 마주할 정도다. 글쓰기 강의를 하다 보면 20대인 분들도 많이 있는데, 20대 때부터 글쓰기를 시작한다니 그저 놀랍고 부러울 뿐이다. 질투와 시샘이 나기도 한다. 불혹을 넘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글쓰기를 통해 그나마 감사한 마음을 건져낸다.

글쓰기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느린 속도'다. 이제껏 빨리, 바쁘게 사느라 놓치고 바라보지 못했던 것들을 돌아보게 한다. 그 돌아보지 못한 것의 팔 할은 바로 '나'다.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정작 '나'는 없는 웃지 못할 해프닝. 글쓰기는 속도를 내려하면 할수록 멈춰지게 된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삶의 리듬에 조롱당하는 게 아니라, 삶의 리듬을 타게 된다. 중년의 흔들림은 그래서 초라하지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걸 털어내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셋째는 '걷기'다.

젊을 땐 죽어도 하기 싫었던 것. 군대에서 평생 걸을 걸 몰아서 걸었던 기억이 있어, 걷기는 내게 지긋지긋한 무엇이었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나가서 좀 걷자고 말하면, 나는 내 젊은 날을 마주한다. 이 좋은 걸 왜 안 하지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젊은 날의 내가 되어 인상부터 찌푸리는 것이다.

걷기의 매력은 '글쓰기'를 닮았다. 속도를 내선 안된다. 속도를 내는 순간 그것은 '걷기'가 아니다. 속도를 낮추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그중 또 팔 할이 '나'와 '내 마음' 그리고 '내 생각'이다. 무엇이 그리 바빠 나는 나를 외면하고 살았을까. 남들과 비교하며 살며 자꾸만 나 자신을 쪼그라뜨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더불어, 걷기를 통해 사색하고 무한한 영감을 얻는다. 걷기를 하고 오면 글쓰기 소재들이 여럿 생긴다.


자존감은 떨어지도록 설계되었다고 생각한다.

누가 그렇게 설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나는 그것을 주워 담아야 하는 숙명 그 자체다.


떨어진 자존감은 누가 주워 주지 않는다.

내가 주워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떨어진 자존감을 주우며, 주워 낸 것은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것은.

삶의 아이러니이자 삶의 기쁨과 슬픔이라고 말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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