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페르소나가 생긴 것이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그 묵직하고 평생 벗겨지지 않을 가면은 그렇게 나에게 씌워졌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신 나에게, 그 가면은 생경하고도 벅찬 무엇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나는 아직도 그 마음을 잊지 못한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기억도 난다. 병원에서 임신한 아내를 돌보던 그때였다. 잠시 집에 들러 무언가를 챙기다 멍하게 거실에 혼자 있던 나.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리 서둘지 않았던 내 머뭇거림은 내가 할 수 있는 방황의 전부였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병원으로 냅다 달렸다.
첫째 아이를 받아 들고 탯줄을 끊을 때 흘렸던 눈물.
그것이 내가 아이들을 보며 흘린 첫 번째 눈물이다. 쪼글쪼글한 핏덩이와 땀범벅이 된 아내를 바라보며 나는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시 거실에서 머뭇거린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고, 그저 열심히 살자는 다짐을 수천 번 마음으로 되뇌었다. 아무리 무겁고 날카로운 쇠사슬이라도, 나는 그것을 발목에 묶고 우리 가족을 위해 뛰겠다고 다짐했다.
곧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가 태어났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벅찬 마음은 있었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므로 첫째 때의 경험으로 인해 울기보단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아장아장하는 첫째와 심장의 고동이 아직은 여릿한 둘째를 배 위에 놓고 누워있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누운 상태에서 소리 내지 않고 펑펑 울었다. 소리 내지 않은 울음은 이상하게 서러운데, 다행히 그 울음의 근원은 감동과 기쁨이었으므로 나는 그 서러움을 만끽했다.
그 모습은 내가 꿈꾸던 것이었다.
배 위에서 곤히 잠든 둘째의 심장과 쌔근대는 소리는 내 영혼 안에서 공명했다. 그 공명은 컸고 우렁찼으며 아빠라는 페르소나를 한 번 더 선명히 각인시켰다. 눈물은 폭포수처럼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다음의 눈물은 역시나 아이들이 아플 때였다.
아이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프곤 했다. 엄마와 아빠가 처음인 아내와 나는 혼비백산했다. 새벽에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로 뛰었던 때, 갑자기 토악질을 하는 아이의 조막만 한 등을 두들겨주던 때, 장난치다 생긴 상처에서 피가 철철 흐를 때. 그 모든 때, 아내와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신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절로 올라왔다. 아프다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볼 때, 내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어지곤 했다.
어릴 적, 내가 아플 때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크려고 아픈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의 병치레를 보며 나도 그 말을 되뇌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이들이 아플수록 커가는 건 나였다.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내가 더 강해져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겠다는 다짐. '크려고 아픈 거야...'라는 말은 언뜻 아이들에게 하는 말 같지만 부모를 부모로 거듭나게 해주는 일종의 주문이었던 것이다. 내 어머니의 말이 그러한 뜻인 줄, 나도 부모가 되어서 알게 되었다.
최근 아이들을 보며 울컥했던 건, 학교로 향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봤을 때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엔 노심초사 부모가 함께 하지만, 정규 과정이 시작되는 학교는 아이들 스스로 걸어 등교해야 한다. 지금은 학교와 학원을 알아서 잘 다녀오지만, 처음으로 아이들끼리만 학교로 보냈던 그날의 장면을 나는 잊지 못한다.
마치 험한 세상으로 아이들을 내보내는 부모의 마음이랄까.
가방은 평소보다 더 커 보였고, 아이들의 등은 여릿해 보였다. 달리는 차들의 속도는 다른 때보다 더 빨라 보였고, 혹여나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 아이들도 이제 저마다의 역할을 하러 저마다의 세상으로 가는구나. 이제 내가 그곳까지 함께 해줄 순 없고, 아이들의 역할을 대신해줄 순 없는 거구나...란 생각이 들자 만감이 교차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면 내 마음은 또 어떨까?
나이가 든 호르몬의 영향으로 눈물은 주책없이 더 흘러나올까?
어차피 지난날의 눈물은 예상하지 못한 때에 흘러나왔으므로, 벌써부터 어느 순간의 눈물을 미리 생각하는 건 쓸데없는 일이 분명하다.
다만 확실한 건, 나는 아이들로 인해 분명 더 울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이 슬픔보다는 벅참의 감동이길 바란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아빠가 처음인 나에게, 아이들의 존재 자체가 나에겐 선물이자 감동이니. 지금 당장 아이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도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