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은 무슨. 오늘 다 허탕이야. 추워 죽겠네. 코로나로 사람들이 집에만 박혀있으니 대리기사를 부를 일이 있나. 연말연시고 뭐고 없어. 으이구, 이러다 코로나보다 내가 먼저 죽겠어. 굶어서 말이야!"
김 씨는 찬바람이 몸안으로 들어올세라 재빨리 옷깃을 여몄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콜이 잡히지 않았다.
"이봐, 난 콜이 잡혔어. 이상하게 오늘은 콜이 연달아 잡히네. 난 가네. 행운을 빌어!"
김 씨에게 콜이 잡혔냐고 묻던 박 씨는 그렇게 유유히 김 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호오..."
김 씨는 손이 시려 입김을 불었다.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오히려 싸늘한 바람이 여미지 않은 어느 곳으로 귀신같이 들어찼다.
'오늘도 허탕이면 안되는데...'
김 씨의 머리 위로 계산기가 떠올랐다. 타닥타닥. '월세, 아이들 학원비, 세금 그리고 생활비...'
그 계산기엔 '+'가 없었다.
오로지 '-'버튼만 있는 계산기. 빼고 빼고 또 빼다 보면. 결국 남는 건 '-'였다.
그놈의 사업이 문제였다.
잘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왔을 땐 뭐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을 괴롭히던 이 부장 얼굴에 사표를 던질 때만 해도 김 씨는 의기양양했다. 아내와 두 아이. 설마 산입에 풀칠하겠냐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에 들어차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철없는 중년의 객기였다는 걸 첫 번째 사업이 망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나마 조금 남은 돈으로 두 번째 장사를 시작했을 때, 김 씨는 코로나를 마주해야 했다. 남은 건 빚이고, 사라진건 그의 자존감과 그를 향한 아내의 신뢰였다. 직장을 때려치울 때만 해도 마지못해 응원을 하던 아내는, 수입이 줄어들자 눈매가 사나워졌다. 경력이 단절된 아내는 허드레 일을 찾아 전전긍긍했다. 초등학생인 아이는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바야흐로 가정의 평화는 그렇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더 버텼어야 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도, 오장육부를 파고드는 이 부장의 욕설도, 시시포스의 저주와 같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반복되던 하루하루도. 이제와 돌아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소중한 것들이 아니었을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언젠간 더 다니고 싶어도 다니지 못할 회사를 왜 그리 빨리 뛰쳐나오고 싶었던 걸까.
"하아..."
날아가는 입김이 김 씨가 날려버린 후회와 아쉬움, 그것들과 다르지 않은 모양새였다.
툭!
그때, 누군가 김 씨의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허공을 바라보던 김 씨는 재빨리 부딪친 사람을 쏘아보았다. 김 씨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검은 옷을 입은 한 사내는 제 갈길을 갔다. 바닥에 보니 그가 흘린 무언가가 있었다.
"저기요, 저기! 이거 뭐 떨어졌..."
이미 사내는 김 씨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김 씨는 주워 든 그것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성냥이었다. 처음 보는 상자 포장. 그곳엔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노안이 왔을까. 김 씨는 다시 성냥을 눈에서 저 멀리 떼어 글을 읽기 시작했다.
[성냥 사용법]
1. 성냥은 한 번만 켤 것.
2. 혹시, 두 번째 성냥을 켰다면 거기서 멈출 것.
3. 또 혹시. 세 번째 성냥을 켰다면 제발 거기서 멈출 것.
4. 네 번째 성냥을 들고 있다면, 운명에 맡길 것.
'뭐야, 이게...'
김 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이 모습이 국민학교 때 읽었던 '성냥팔이 소녀'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허, 이거 뭐지? 그럼 난 성냥팔이 중년인 건가?'
실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다만, 성냥팔이 소녀와 다른 건 성냥이 아니라 저 자신을 팔아서라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작금의 상황이었다.
김 씨는 성냥갑을 열었다.
사용법에 나와있는 대로 그곳엔 딱 네 개의 성냥개비가 있었다. 김 씨는 성냥을 켤까 말까를 순간 고민했다. 왠지 묵직한 경고와도 같은 성냥 사용법을 가볍게 여기기에는 께름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번은 켜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악, 탁.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알 수 없는 몽롱한 터널이 이어지더니, 김 씨는 어느새 강남 한복판의 브랜드 아파트 거실에 서있었다. 집채만 한 TV와 앉아도 될까란 생각이 드는 최고급 가죽 소파. 아름답게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이 김 씨의 귀를 파고들어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헷갈리게 했다.
스르륵.
성냥불이 꺼지자 모든 게 사라졌다. 아쉬웠다. 잠시라도 가지지 못한 걸 가져봤다는 그 순간의 느낌을 떨쳐버릴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두 번째 성냥은 켜도 되겠지? 거기서 멈추면 되니까 말이야.'
차악, 탁.
두 번째 성냥의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는 운전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다른 누구의 차가 아닌 자신의 차. 최고급 스포츠카였다. 승차감은 물론 하차감도 겸비한 그 차 안에는 가족이 있었다. 웃음이 가득한 가족들의 얼굴을 보며 그는 가속페달을 밟았다. 우렁찬 엔진 소리와 부드러운 승차감. 운전이 이렇게 재밌고 즐거운 것이었다니. 남의 차를 대신 운전해주던 신물은 온데간데없었다.
스르륵.
그러나 운전의 손맛도 잠시. 성냥불은 꺼졌고, 무엇보다 함박웃음을 짓던 가족들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김 씨는 절망했다.
'아니, 아니... 이건 아니잖아. 세 번째, 세 번째 성냥을 켜야겠어.'
차악, 탁.
5, 19, 24, 38, 43 그리고 마지막 번호는... 바로... 스르륵.
'아씨, 이거 복권 번호 아니야? 왜 하필 마지막 번호 전에 성냥이 꺼지냐고. 에잇, 모르겠다 정말!!!'
차악, 탁.
김 씨는 네 번째 성냥불을 켰다. 어떻게든 될 거라는, 될 대로 되라는 조급한 마음이 군대처럼 몰려왔다.
그때였다.
큰 경적소리와 함께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찌나 밝고 빠르던지, 김 씨 눈에는 그것이 별똥별처럼 보였다.
'아,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빌어야 하는데... 복권 당첨, 아파트 한채, 벼락거지 말고 벼락부자 그리고 행복한 우리 가족...'
쾅!!!
김 씨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순간의 시간이 억겁 같았다. 날개가 없지만 꽤 긴 시간을 날고 있는 듯한 느낌. 김 씨의 머리엔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걸까. 그저 보통의 삶을 살았을 뿐인데. 그리 큰 욕심을 가진 적은 없는데.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말자며 착하게 살았는데.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기기만 했던 삶은 그렇게도 떫고 쓴맛이었다.
털썩...
땅에 닿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김 씨의 몸은 이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고통은 없었다. 지금 이 고통보다 살아온 고통이, 아니 살아갈 고통이 더 커서일까. 보통이란 말을 멀리했어야 했나, 더 큰 탐욕을 일삼았어야 했나, 누군가를 배려하기보단 짓밟고서라도 내가 올라서야 했나.
후회와 깨달음이 동시에 몰려왔다.
헛웃음이 났다.
차가운 바닥에 곤두박질친 김 씨는 그렇게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서서히 스러져갔다.
띠링, 띠링.
"어이, 김 씨! 콜 들어왔어. 정신 차려. 일 안 갈 거야? 나는 몇 시간이 지나도 콜 하나 안 들어오는데. 그렇게 졸고 앉아 있을 거면 그거 나눠. 내가 갈 테니까."
푸념 섞인 박 씨 목소리에 김 씨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떴다.
'아, 뭐지. 꿈이었나. 몸이 찌뿌둥한데... 뭐가 이리 생생하지? 좋은 꿈인가? 나쁜 꿈인가? 아, 그런데 행복했어. 나쁘지 않았어. 찬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을지라도 잠시라도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만끽했어. 무엇보다 환하게 웃고 있던 가족의 얼굴들을 보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후 그 맛을 더 보고 싶어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김 씨는 입을 쩝쩝거렸다.
김 씨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콜을 받은 곳으로 뛰쳐나갔다.
몸은 무거웠지만 이상하리만치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늘 하루 허탕 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함께였다. 풍족하진 않지만, 오늘은 그래도 치킨과 간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두 손 무겁게 집으로 향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디에서 이런 마음이 올라오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김 씨는 그 기분을 그저 만끽하기로 했다.
'성냥을 팔든 나를 팔든... 우선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보자. 살든지 죽든지 내게 일어나지 말란 일들의 것은 없으니까. 인생 한 치 앞을 모르는 거니까.'
추운 겨울.
깊고 깜깜한 밤.
김 씨 머리 위 밤하늘 어느 한가운데로, 위성인지 별똥별인지 모를 빛 하나가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