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묵묵히, 나는 오늘도 한걸음 더 나아간다.
갑자기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떠오르는 자음과 모음의 파편들은 기어이 어느 한 단어나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그저 단순한 활자라고 볼 수 없다.
어차피 활자는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고, 그 '표현'이라는 말 안에는 생각과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언어가 생각과 감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그러하지 않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큰 범주이냐를 따지다 보면 '언어가 생각의 감옥'이라는 명제에 갇힐 수 있으나,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더 먼저이냐를 의문한다면 감옥이란 말은 그 의미를 잃는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듯.
사람은 표현을 하기 위해 언어를 만들었으나, 언어가 사람을 좌우한다. 그것은 언어가 생각을 좌우해서가 아니라, 생각과 언어가 그 순서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이 느껴져 떠올리는 단어와, 어떤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감정의 상관관계가 바로 이 공존의 증거이자 메커니즘이다.
오늘은 내게 '묵묵히'라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이것이 내 감정을 드러낸 단어라면,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단어를 떠올리게 된 걸까?
아마도 내겐 묵묵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입을 다문 채 말없이 잠잠하게. 내 삶을 꾸려나가야 하기 때문에.
할 말은 많지만, 이제껏 내가 내어 놓은 말들은 다른 누군가에겐 필요 없다는 것을 안다.
그저 묵묵히 내 갈 길을 가야 하고, 그저 묵묵히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과 삶이 내게 알려 준 깨달음이다.
예전엔 세상에 대한 부조리를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그러나 남는 건 조목조목 한 의문의 파편들이었다.
입을 닫고 그저 하루를 살아낸 날이 내게는 더 보람됨을 나는 알게 된 것이다.
묵묵한 것의 힘은 실로 놀랍다.
요란한 것의 힘은 그저 그렇다.
나는 오늘도 말을 아낀다.
그러나 생각과 질문 그리고 실행은 아끼지 않는다.
묵묵히.
그렇게 묵묵히, 나는 오늘도 한걸음 더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