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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24. 2022

네게 줄 수 있는 건 오직 포근함

그렇게 출근길에 아이들의 이불을 살필 것이다.

알람 소리에 몸을 뒤척인다.

출근해야 할 시간이다. 어스름한 하늘. 어스름한 시간. 어스름한 정신. 


몽롱함을 거둬내고 기어이 몸을 일으켜야 하는 이유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가족들은 곤히 잠든 시간.

조용히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크지도 않은 눈인데 반쯤 뜬 눈으로 양치질을 하고, 좀 더 커진 눈으로 면도와 샤워를 하면 출근 준비는 거의 마무리가 되어간다.


어제 끝나지 않은 일과, 여태껏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쉽지 않은 문제와 도전들을 생각하면 머리는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 지끈함은 한 번에 멈추는 법이 없고, 심장 박동수와 함께 그 속도는 계속된다.


이 힘든 마음을 어떻게 달랠까.

나는 가족에게 향한다. 고이 자고 있는 아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바쁜 나를 대신해 아이들의 뒷바라지와 공부를 함께 봐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으로 전한다.


그리고는 아이들 방으로 향한다.

첫째 녀석이 웅크려 자고 있다. 둘째 녀석도 몸으로 약간의 추위를 말하고 있다. 다른 방에 있지만 거의 같은 자세로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잠시 웃음이 났다. 나는 이내 침대 아래에 떨어진 이불을 들어 아이들의 목까지 덮어 준다. 잠결에, 기다렸다는 듯. 아이들은 이불을 주섬주섬 모아 자기만의 이불 둥지를 만든다.


포근함 때문일까.

아이들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내려앉는다.


나는 알았다.

이 미소가 나를 살게 하고 있음을.


나는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지만 그중에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하나가 바로 '포근함'이다.

매섭도록 시린 세상 속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 이 포근함을 떠올리면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솟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포근함을 안고 자란 사람의 얼굴엔 묘연한 빛이 서려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내 어렸을 땐 느끼지 못했던 그 포근함의 결핍이, 그것을 알아보는 능력을 내게 주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들이 아빠가 출근할 때 덮어준 그 이불의 포근함을 선명하게 기억하길 바란다.

잠결이라도, 무의식적으로라도 알 수 있도록.


덮어줄 수 있을 때에.

포근함을 줄 수 있을 때에


그렇게 출근길에 아이들의 이불을 살필 것이다.


아이들이 날 살리는 것처럼.

나도 아이들을 살리고 싶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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