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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Apr 17. 2016

글쓰기 딱 좋은 날씨

날씨는 참 유명하다.

나도 한 번 나오지 못한 뉴스에 단골 꼭지로 등장한다.


날씨를 별도로 전하는 사람까지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잘 차려입고 세련된, 지성인의 표상이라 할 만큼의 신사나 숙녀가 그것을 전한다.


무엇을 의미할까?

날씨는 그만큼 우리 생활과 삶에 밀접한 관계가 있고, 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 테다.


눈이 오면 눈이 와서, 비가 오면 비가 와서.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매년 반복되는 것이라 'New(s)'라고 칭하기가 맞나 싶을 정도.

재밌는 건, 그럼에도 볼 때마다 새롭다는 것. 결국엔 '뉴스'가 되고 만다.


"좋은 날씨와 나쁜 날씨"


우리는 흔히들 말한다.

"날씨가 좋다" 내지는 "날씨가 안 좋다".


햇살 가득한 날 창 밖을 보며, "와 날씨 정말 좋아. 어디라도 가야겠어!"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 "와 날씨 완전 안 좋아. 집에나 있어야겠다!"


좋고 나쁨의 기준은 누가 정했을까?

누군가를, 어떤 대상을 두고 우리가 '나쁘다'고 단죄할 입장이긴 한 걸까?




그 옛날 어느 마을에 기와를 굽는 아들과 우산을 파는 아들, 그 둘을 둔 어머니 이야기.

해가 쨍쨍하면 첫째 아들 생각에 기분 좋고, 비가 오면 둘째 아들 생각에 기분 좋고.


어쩌면 우리는 그 반대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가 쨍쨍하면 둘째 아들 걱정에, 비가 오면 첫째 아들 걱정에.


모든 상황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자는 계몽적인 글쓰기는 아니고.

날씨를 대할 때,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 전에 그대로 그것을 한 번 느껴보자는 소심한 주장이랄까?


궁극적으로 생각해보면 좋고 나쁨은 날씨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은 우리의 감정과 정서, 그리고 그 상황에 달려 있다. 그 날, 그 날씨를 마주한.


"~ 하기에 좋은 날씨"


햇살 가득한 날씨에 이별한 사람에겐, 그 날씨가 더 지옥 같을 수 있다.

우중충한 비 오는 날씨에 첫 키스를 한 커플에게 그 날의 날씨는 무척이나 센티하였을 것이고.


따뜻한 커피와 감미로운 재즈는 비 오는 날에 제법 더 어울린다.

어쩌면 비가 와서 커피와 재즈가 생각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날씨를 받아들여 느끼는 그 감정은 모두에게 자유다.

그러니, 햇살이 있다고 '좋다' 또는 비가 온다고 '안 좋다'라고 단정치 말고 감정의 자유를 느껴보면 어떨까.




여기 내가 잠시 주재하는 네덜란드는 하루에도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일 년에 햇살이 잠시라도 비치는 날 수가 300여 일인데, 잠시라도 비 오는 강수일수도 300여 일일 정도다.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말한다.

"날씨 핑계 대고 무엇을 못한다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비가 오고 태풍이 불어도 자전거를 한 바퀴 한 바퀴 굴려가며 전진하는 사람들.

비가 와도 피크닉을 하고, 꽃놀이를 하고, 운동하고, 생일 파티를 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일상을 소중히 대하는 그들에게 날씨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그러기에 날씨를 친구처럼 그저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 날씨에 지배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있어 희로애락은 신이 내린 선물과 같다.

그 하나하나의 감정이 소중하되,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살아가다 보면 모두 필요한 그 감정들을 대하듯이.

날씨도 우리가 대하여할 것들이고 좋고 나쁘다고 단죄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햇살이 비치든, 눈이 오든, 비가 오고 강풍이 불든.

기뻐하기에, 분노하기에, 슬퍼하기에 그리고 즐거워하기에 좋은 날씨 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오늘 밖은 햇살과 비가 오락가락한다.

더불어 내 맘도 싱숭생숭한 것이.


왠지, 글쓰기 딱 좋은 날씨인 듯하다.

오늘 날씨는 이렇게, 받아들이고 느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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