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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Dec 07. 2022

글쓰기 버튼을 누를 때마다 설레는 이유

그 버튼 이름이 '글쓰기'라서 다행이다.

컴퓨터의 시대가 아니었을 때 글쓰기는 종이에 펜으로 쓰는 것이었다.

엄지와 집게 그리고 중지 손가락으로 펜을 세워 잡는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은 펜의 기울기를 조율하며 바닥을 기댄다. 연필심이나 볼펜심이 종이 표면에 닿아 미끄러지고, 마침내 그렇게 글쓰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저 하얀 종이가 아니었다. 그저 여백에 글씨를 썼다면, 그것은 반성문이나 무언가를 외우기 위한 깜지였을 것이다. 글쓰기를 위한 종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원고지'다. 풀어말하면 '원고를 쓰는 종이'를 뜻한다. 그러니까 글쓰기를 마음먹고, '인쇄하거나 발표하기 위해 쓴 글'을 담아내는 그릇. 원고지 앞에서 나는 자뭇 진중해졌던 기억이 난다.


원고지는 가로 20칸, 세로 10줄로 이루어져 있다.

띄어쓰기를 포함하면 200자다. 그래서 흔히들 '200자 원고지'라 부른다. 이것은 하나의 기준이다. 글쓰기 길이를 재단하거나 제약할 때, '200자 원고지' 기준이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글자 수 계산기 프로그램도 이 원고지를 기준으로 셈을 한다.


그러나 이제 글쓰기의 풍경이 바뀌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보편적인 모습은 변함없지만, 펜을 종이에 대고 마찰을 일으켜 흑심이나 잉크의 흔적을 남기는 모습은 더 이상 흔하지가 않다. 책상 앞에 앉은 사람들 앞엔, 모니터와 키보드가 놓여있다. 모니터는 종이를 대신하고, 키보드는 연필과 볼펜을 대체한다. 이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상징적 구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 그 자체를 아날로그나 디지털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본질은 글쓰기도,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질은 '글을 쓰는 나'다. 그러니, 아무렴 어떤 모습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도구를 가지고 쓰는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많은 글을 써낼 수 있다면. 꾸준히 쓸 수 있다면. 그러함으로 스스로를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이유이며, 본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제.

원고지를 펴고 펜으로 글을 쓰려 준비하는 건. 컴퓨터를 부팅하고 브런치 페이지를 여는 것과 같다. 브런치 페이지를 열면 '글쓰기' 버튼이 보인다. 버튼의 이름이 참으로 잘 지어졌다. 이 버튼을 누르면, 글쓰기를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촉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마음속엔 여러 가지 버튼이 있다. 그 안엔 눌러야 할 버튼도 있고, 그러하지 말아야 하는 버튼도 있다. 예를 들어, 참다 참다못해 '화'라는 버튼을 누르면 삶이 피곤해지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웃음 버튼'이라는 것도 있어 얼굴에 화색을 돌게 하는 경우도 있다.


'버튼'은 그렇게,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무언가를 촉발하는 역할을 하며, 버튼을 누르는 자의 의도는 버튼의 눌림과 함께 의지로 변환되어 행동이나 반응을 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피곤하고 귀찮을 때. 쓸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이 시간에 짧은 동영상이나 보자는 유혹이 몰려올 때. 나는 마음속 '글쓰기 버튼'을 먼저 누른다. 그러면 몸이 일으켜진다. '생산자의 삶'을 살자고 했던 스스로의 다짐이 떠오르면서. 그리곤 브런치 사이트를 열어 (물리적?)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이내 하얀 여백이 나타나고, 나만의 원고지가 펼쳐진다.


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마음이 설렌다.


글을 쓰는 그 순간.

그것은 나의 생산물이 되고. 그 생산물은 내 자산이 되고. 그 자산은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는 영향력이 되고. 그 영향력은 내 행복의 이유가 되니까 말이다. '강한 영향력을 나누는 생산자의 삶'에 한 걸음 다가가는 그 여정은 설렐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버튼 이름이 '글쓰기'라는 건.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이다. 그 이름이 아니면 붙일 다른 이름이 없다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내게 당연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 버튼 이름이 '글쓰기'라서 다행이다.

내 마음속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친근하다.


글쓰기는 그렇게, 나에겐 당연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시작이자 여정이다.

글쓰기 버튼을 누를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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