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표 101가지 삶의 지혜>
세상엔 좋은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나쁜 사람이 많을까.
질문을 바꿔 보겠다. 내 기쁨과 슬픔을 온전히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너희보다 좀 더 긴 삶을 살아보고, 더 많은 밥을 먹어보고, 더 큰 숨을 쉬어보니 그것들을 온전히 받아 주는 사람은 적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은 나에게 나쁜 사람일까?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허나 이것은 동화 속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쁨은 질투가 되고, 슬픔은 약점이 된다. 애석하지만, 안타깝지만 그게 사실이다.
아빠가 직장인으로서 책을 내었을 때, 아빠는 이를 좋게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적이 더 많이 생겼다. 시기와 질투, 나의 경쟁자들은 이것을 빌미로 아빠가 회사 생활을 등한시한다고 몰아붙이거나 아빠가 쓴 글을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험담을 하는 많은 사람을 목격했다. 책이 나왔다고 기쁨을 나누던 나를 후회한다.
슬럼프를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이 지쳐 어려움을 토로하면, 일에서 배제되거나 모든 실수는 슬럼프를 겪고 있는 내 탓으로 귀결된다. 누군가 위로를 줄거라 기대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은 위로를 줄 여유가 없다. 그런 척은 할 것이나, 그게 진심일 것이라 착각하지 마라. 슬픔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 된다.
이제 좀 감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내 '기쁨'과 '슬픔'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감정을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감정이 아닌 자신에게 유리한 빌미로 그것을 삼는다. 생각해 봐라. 누군가의 복권 1층 당첨보다 내가 길에서 주운 1,000원에 더 기뻐하고, 누군가의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내 손톱 아래 작은 가시가 더 아프다.
나쁜 사람이란 없다.
그저 각자의 감정과 고통에 충실할 뿐이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기쁨으로 들뜰 때, 슬픔으로 무너질 때.
혼자서 해결해라. 누구의 공감과 위로를 바라지 마라. 혼자 누리고, 혼자 감내해라. 정히 힘들면, 가족들에게만 조금 내색해라.
이순신 장군이 자신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 이유가 다 있다.
너희 슬픔을 타인에게 알리지 말라.
너희 기쁨도 타인에게 알리지 말라.
그럼에도 그것을 알릴 수밖에 없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러할 때도 있어야 한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아빠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들을 이해시켜 줄 것이다.
직접 경험하고 직접 깨달아라.
직접 경험하고 직접 깨달은 배움이야말로 두 배가 되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종합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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