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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Feb 12. 2024

재능이 애매하다는 회의가 들 때

나를 믿고 사랑하는 정도가 애매한 것은 아닌지

거미집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잠시 잠이 들 뻔했다.

아니, 어쩌면 자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래의 대사를 들었을 때 나는 거하게 뒤통수를 맞으며 깬 사람처럼 얼얼한 기운을 맛보았다.

“재능이란 게 뭐 별것 있나.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지. 지금 자네 눈앞에서 흐릿하게 어른거리는 게 있다고 했지? 그걸 믿고 가. 그게 누구 딴사람 머리에서 나와서 어른거리는 게 아니잖아.”

- 감독 신상호 -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애매하다.

성공과 함께 그 애매함은 해소되며, 아이러니하게 실패 후에도 애매함은 해소된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재능이, 내가 해 나아가고 있는 것들이 유용한 것인지 아니면 무용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근거는 결과에 따라 갈린다. 삶이 그저 쉽지만은 않은 것이, 결과는 때로 과정이 되고 과정은 또 어느 하나의 결과이기 때문에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인지를 가늠하기가 곤란하다.


혼란함과 곤란함 속에 나는 스스로 회의한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걸까.
내가 가진 재능이 애매한 건 아닐까.
그저 어느 범주 안에서 깨작깨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왜 나는 성공한 어느 누구처럼 대서특필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더 혼란해진다.

언젠가 택시에 타 기사님의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플루트를 배우러 영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지금은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며 무얼 믿고 플루트에 모든 걸 쏟아부었는지 그저 후회가 된다는 말이었다. 기사님을 동정할 새도 없이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믿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의 끝이 아무런 상관없는 일로 귀결되면 어떡하지?


'자신을 믿는 게 재능'이라는 말을 듣고는 갑작스러운 영감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 재능이 애매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 스스로를 믿는 믿음의 정도가 애매한 거겠지. 노트를 펼쳤다. 평소라면 자판을 두들겼겠지만, 진심과 온 힘을 담아 꾸역꾸역 쓰고 싶었다.



* 한 글자라도 날아갈 가... 노트에 휘갈겨 쓴 것을 다시 이곳에 적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키우는 십계명]


애매한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 때, 재능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하나.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것.

수용하고 포용할 것.

그 어떠한 못난 모습일지라도.


둘.

장점은 키우고 단점은 더 키우고.

잘하고 있는 것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단점은 내가 성장해야 할 필요를 알려 주는 고맙고 감사한 시그널이다.


셋.

행운을 믿어라.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하지 말고.

일어난 것에 힘을 실어라.

그리하면 행운은 계속된다.


넷.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좋다. 설령 계획이 엉망이어도.

실천이 잘 되지 않아도.

계속해서 반복하라.

작심삼일이 무섭다면, 3일 동안 반복하라.

평생을.

매일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라.


다섯.

생산자가 되어라.

가치를 창출하고, 가치로 치환되는 것들을 자신에게 갖다 바쳐라.

수혜를 보는 것은 늘 나 자신이며, 나는 그것을 누릴 권리가 있다.


여섯.

남 탓하지 말고 자기 탓을 하라.

세상과 타인을 탓하면 남는 게 없다.

그러나 나를 탓하면 적어도 원인은 알게 된다.

원인을 알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또 알게 된다.


일곱.

두려움과 불안을 친구로 삼아라.

그들은 적이 아니다.

나를 괴롭히러 온 것이 아니다.

이미 괴로운 나의 상태를 알려 주는 고마운 친구들이다.

그들을 친구로 삼을 줄 알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하지 않았던 것에서 동기를 얻을 수 있다.


여덟.

페르소나의 힘을 믿어라.

내가 가진 페르소나는 무엇인가.

그 안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내가 하고 싶은,

되고 싶은 페르소나를 만들어 세상에 알려라!

그리하면 원하는, 되고 싶은 모든 게 이루어진다.


아홉.

남 잘되기를 바라라.

온갖 불행은 비교에서 온다. 비교는 생상적으로만 하자.

남 잘되기를 바라면 잘된 사람들에게서 배울 수가 있다.

그러하지 않으면, 나는 늘 누구와 비교하여 불행하고 열등한 사람으로 남는다.


열.

나를 사랑하는데 누군가의 허락은 필요 없다.

'애(愛)'와 '증(憎)'을 포괄하는 사랑을 하라.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갈 절대적 진리다!




아직도 가슴이 벌렁 거린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영화의 한 대사와 함께 벅차게 써 내려갔다. 손이 얼얼했다. 오랜만에 잡은 펜, 오랜만에 종이에 직접 마찰을 일으키며 쓴 글. 한 글자라도 날아갈까, 놓칠까 노심초사했으나 손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고 그로 인하여 조급한 마음은 차차 가라앉았다. 나는 뜨거운 열정이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뜨거움은 금세 식어 버리고, 번뜩임은 게눈 감추듯 사라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재능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 때.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믿고,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사랑하며,

나는 얼마나 그 재능에 시간과 정성을 들였는지 돌아보라.


주어지는 재능은 신의 영역이지만, 스스로를 믿고 사랑하는 것은 나의 영역이다.

믿음과 사랑이 굳건해질수록, 우리들의 재능은 더욱더 견고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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