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

<스테르담 글쓰기>

by 스테르담

어떤 이는 나에게 왜 이리 글쓰기에 대해 자신과 타인을 종용하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글쓰기에 대한 글을 계속해서 내어 놓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같은 이야기들을 달리 표현했고, 다른 의미를 같은 논조로 풀어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글쓰기에 대한 글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이라는 것이다. 이미 글쓰기에 대한 책을 두 권 집필했고, <생산자의 법칙>에서도 글쓰기는 생산자로 거듭나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이라고까지 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왜일까?

얼마 전, '그럼에도 써야 하는 이유'란 글을 썼다. 이에 한 독자께서 답글을 남기셨다.

제가 한 동안 글쓰기를 게을리했습니다.
작가님 글 보고. 안 쓰면 큰 일 나겠다 싶습니다. 좋은 자극 감사합니다


고맙고 감사했다.

글쓰기에 대한 의미를 함께 해주는 글.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그저 한분이라도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글을 생산해내고 있으니까. 어느 한 분께라도 다가간 그 영향력을 나는 과소평가 하지 않는다. 글쓰기는 사소한 듯 시작되지만, 삶을 통째로 바꿔버릴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경험한 나는, 이처럼 글쓰기에 대한 글을 멈추지 않는다.


답을 주신 독자님의 문장 속, '게을리했다'란 말을 곱씹어 본다.

무엇에 게을렀던 것일까. 글쓰기를 하지 않은 것 그 자체에 대한 게으름은 일차원적인 것이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정말 큰 의미가 숨겨져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을 돌아보는데 게을렀다'란 뜻.

글쓰기는 그저 활자를 내어 놓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나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자신만의 '시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 '시간'과 '공간'은 혼자 있음으로 가능하다. 진정한 외로움과 고독을 곱씹을 시간. 외로움과 고독의 정도를 올려놓아야,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돌아본다. 타인과 소비 그리고 짧은 동영상에 익숙한 작금의 우리 삶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야금야금 빼앗아먹는다.


외로움엔 '허무한 외로움'과 '생산적 외로움'이 있다.

고독엔, '타의적 고독'과 '자의적 고독'이 있다.


생산적인 외로움과 자의적인 고독은, 비로소 글을 자아내게 만든다.

허무함과 타의에 의한 외로움과 고독은 사람을 소비하게 만든다.


글쓰기는 '생산적 외로움'이자 '자의적 고독'의 결과다.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얼마나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해 왔는지를.


어쩌면 내가 쓴 글들은, 물리적으로 울지 못하고 마음으로 쏟아낸 포효이자 눈물일는지 모른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글의 양은, 그동안 자신을 돌아보는 걸 게을리한 미안함의 양에 미치지 못한다. 고로, 나는 여전히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글쓰기'다.

글쓰기만큼 자신을 돌아보는데 좋은 다른 수단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만약, 다른 무언가를 찾는다면 나는 그것에 대해 말할 것이다.


아니, 그것에 대해 쓸 것이다.

어차피 쓸 수밖에 없음을.

나는 다시 또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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