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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삶이란 부조리극>

by 스테르담

2단 기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이 꼭 삶과 같을 때가 있다.

지금에야 수동기어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누군가 그것을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공감할 것이다. 기어가 맞물리지 않으면 차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또는 2단 기어에 머물러 있으면 엉금엉금, 기름은 무지막지하게 먹으며 엔진엔 과부하가 걸린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우리네 삶이 그와 같다.


누가 만든 섭리인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더러운 논리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데, 다시 '절망'은 '희망'의 언저리를 늘 도사린다. '절망'속에서 '희망'을 찾는 건 매우 쉽다. 어두운 터널에서 한 줄기 빛을 찾는 건 명확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99%가 어두운데, 1%의 빛이 들어온다고 웃는 존재들이 얼마나 안쓰러운가. '희망'은 고문이 될 수도 있고, 헛됨이 될 수 있다. 그 한 줄기 빛을 따라가다가 빛이 사라지거나, 빛의 끝엔 또 다른 터널이 있을 수 있다. '희망'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며, 누군가는 헛된 희망을 품고 인생의 모든 걸 내다 걸기도 한다.


'희망'을 도사리는 '절망'은 어떤가.

우리가 행복을 오래 누리지 못하는 건, 희망의 최고봉에선 여지없이 불안함이 엄습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희망을 품는 자에겐 절망의 불안이 내포되어 있다. 행복이 행복으로 끝나고, 희망이 희망으로 귀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말했지 않은가. 참으로 더러운 논리가 우리네 삶엔 섭리라는 이름으로 고착화되어 있다고.


우리는 늘 '절망'과 '희망' 사이에 놓여 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 어느 시트콤 OST의 가사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It's like you're always stuck in second gear. (시트콤 '프렌즈' OST 중)


절망은 희망을 피어나게 하는 장치이며.

희망은 절망을 애써 덮으려는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한 당신의 섭리가, 참으로 부조리라는 생각이며 꽤나 내 삶을 불편하게 만든다과 생각한다.


절망과 희망.

삶이라는 부조리.


그 옹졸하기 짝이 없는 절대자의 권력에 놀아내는 스스로가 한심하다.

고로, 나는 그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삶을 잠시 내려놓고자 한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지 않고.

희망 속에서 절망을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존재가 아닌.

중간에서 양쪽을 오가는 존재로의 탈바꿈.


부조리는.

부조리로 맞서는 것으로.


어쩌면 조금 더 고단할지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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