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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27. 2017

[큐켄호프] 유럽의 정원에 꽃이, 아니 봄이 왔다.

꽃이 피어서 봄이 아니다. 꽃을 본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봄이라 한다,

봄을 맞이 하는 우리의 자세는 언제나 같다.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의 절경에 감탄하고, 따뜻해지는 기온에 마음을 놓는다. 괜스레 시상(詩想) 몇 개가 떠오르면서 이 환절기에 대한 호들갑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 반복되는 호들갑은 지겹지가 않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돌아보게 하느 신호이기 때문이다. 각박한 삶 속에서 하늘을 봐야 하고, 또 꽃이 피어나니 그것을 보라는 것이다. 이런 신호가 없으면 우리는 아마 삶의 대부분을 일에 사무쳐 지낼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봄은 그래서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고마운 계절일지 모른다.


꽃이 와서 봄이다. 봄이 와서 꽃이다.


네덜란드의 겨울의 끝. 그리고 봄의 시작은 아직도 매섭다. 아침 기온이 5도로 시작해 하루 중 가장 태양이 높이 뜬 그 시간은 16도를 웃돌지만, 그 일교차가 10도가 넘는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은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이 맞닿아 있음을 시사한다. 기온이 올라가도 네덜란드의 북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는 꽃들은 그것에 익숙하다. 다른 나라의 그것들과 달리, 매서운 바람에도 기어코 고개를 내민다. 특히나 튤립은 네덜란드의 국화로서 그 역할을 충분히, 이 추운 계절에도 해낸다.


햇살이 만드는 선명함의 극치


네덜란드 겨울의 날씨는 우울하고 추적하지만, 그것을 보상하고도 남을 햇살은 봄과 여름에 떠오른다. 그 햇살이 만드는 세상의 선명함은 우리네에게 선물이다. 지극한 축복이다. 화소가 낮은 저사양의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 사양을 뛰어넘는 선명함은, 사람의 눈으로 봤을 때 더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마음과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이 스산하지만 선명한 날들이 마침내 봄을 깨우치는 것이다. 지평선과 맞닿아 훨씬 더 커 보이는 하늘을 도화지 삼아, 비행기들은 저마다의 궤적으로 붓칠을 한다. 어떤 그림이 나올지는 관심 없다. 예술을 해석하는 것은 관객의 몫이기에, 봄의 한편에 서서 그것들을 보고 느껴지는 것들의 봉긋함이 봄의 꽃들과 닮았다고 해두면 될 것이다.


유럽의 정원에 꽃이 피었다. 그렇게 봄이다.


튤립 축제의 이름이 바로 “큐켄호프 (Keukenhof)”다. 흔히들 ‘튤립 축제’란 말은 친근한데, 이 “큐켄호프”는 좀 낯설다. 더치어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 뜻을 보면 좀 더 흥미롭다. “큐켄(Keuken)”은 “부엌”을 의미하고, “호프(Hof)”는 “정원”이다. 즉, “Keukenhof”는 “KitchenGarden”을 말한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사냥터로 쓰이던 이곳은 16세기에 어느 백작부인이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백작부인의 집 부엌으로 갖은 채소와 허브를 재배하여 가져오게 된 것이 그 이름의 유래다. 백작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돈 많은 상인이 이곳을 인수하고, 동인도 회사의 선장이나 유명한 정치인들의 주거지가 된다. 19세기에 이르러 이곳에 조경 사업과 단장이 이루어지고, 1949년에 이르러 큐켄호프가 위치한 “Lisse”도시의 시장 아이디어로 인해 튤립 공원으로 마침내 재탄생하게 된다. 개장한 1950년 첫 해는 약 23만 명의 사람들이 오갔고, 현재는 90만 명이 넘게 방문하는 큰 축제가 되었다.


큐켄호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든 것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생동감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 경이로움도 함께 한다. 7백만 개의 꽃 구근과 800개가 넘는 튤립의 종류를 보면 그렇다. 물론, 놀라움의 연속이 계속되면 감흥이 점점 덜해지기도 한다. 특별함의 연속이 보통의 결과를 낳거나, ‘우와’를 감탄하며 지나가던 스위스 융프라우의 절경을 보다 보면, 어느새 눈 덮인 산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그래도 그 튤립 축제가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은 해마다 ‘테마’가 있다는 것이다. 45분이 소요되는 “Whisper boat”는 튤립이 평야에 줄을 지어 끝없이 이어진 것을 감상하거나 사진 찍기 제격이다. 우리가 엽서에서나 보던, 평야에 끝없이 줄지어진 튤립은 사실 재배 농가의 사유지로 “큐켄호프” 내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네덜란드에 왔다면 자전거를 빼놓을 수 없으니 큐켄호프 주변을 자전거로 유유히 달려 보는 것도 추천한다. 전체를 다 돌려면 35km를 달려야 한다. 물론, 의무는 아니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달리고 싶은 만큼만 달리고 반납하면 된다.


큐켄호프는 3월에서 5월까지 이어지지만, 가장 추천하는 방문 시기는 4월 중순이다. 3월은 생각보다 춥고 꽃이 만개하기 전이라 꽃보다는 봉오리를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월은 이미 꽃들이 지기 시작하는 때로, 따뜻한 날씨라 꽃이 한가득할 거란 기대를 하고 갔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꽃의 종류가 확연히 줄어 있고, 많은 곳들이 듬성듬성한 모양새다. 꽃잎이 후드득 떨어진 초라한 튤립들이 즐비하다. 추운 이른 봄에 꽃이 피고, 5월의 햇살이 오기도 전에 지는 튤립이라니, 어찌 보면 추위를 타지 않고 더위를 잘 타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그것에 동화되었는지 모른다. 하긴, 400년이 흘렀고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그도 그럴 수밖에.

 꽃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 꽃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흥망’을겪었다.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꽃 바보’라고 감히 말한다. ‘바보’라는 이면에는 정말 ‘어리석은’이란 뜻이 있기도 하지만, 그것만을 ‘사랑’한다는 의미도 있으니 어느 네덜란드 사람에게 돌 맞을 정도는 아닌 표현이라 믿는다.

(참고 글: "꽃바보 네덜란드")




3월 중의 이른 방문은 네덜란드를 방문한 손님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봄을 유난히 좀 더 빨리 느껴보고 싶었던 개인적 바람도 있었다. 아직은 피지 않은 봉긋한 그것을 보는 것도, 다가올 것들에 대한 설렘으로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나름대로 일찍 그 모습을 보인 것들에 대한 찬사를 전해주고도 싶었다.


그렇게, 유럽의 작은 앞마당에 꽃이 피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봄이 왔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비로소 꽃을 바라보게 되는 우리 자신을 발견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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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내공' (나를 지키고 성장시키며 일하기!)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나!)

'아들에게 보내는 인생 편지' (이 땅의 모든 젊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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