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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01. 2017

아이들이 남긴 밥을 먹는다는 것

정말, 그 밥을 왜 먹게 되는 것일까?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재로 나의 꿈은 단란한 가정을 어서 꾸리는 것이었다. 

그 단란한 가정의 그림 속엔 사랑하는 배우자와 왁자지껄한 아이들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의 즈음에 다다르니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었다. 아이 없이 살다가 정 힘들면, 입양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참으로 의아했다. 분명, 가정을 꾸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갑자기 떠오른 이러한 아이러니한 생각들은 나를 매우 혼란케 만들었었다. 돌이켜보건대, 아마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된다는 건, 나의 역할과 정체성이 바뀌는 것이고 나보다는 다른 어떤 존재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좋은 아빠가 꿈인데, 아이를 낳아야 할까를 고민했다니... 부모가 되기 전의 두려움을 나의 무의식이 먼저 알아차린 반응이었다.


내 앞에 놓인 아이들의 남겨진 밥


토요일 아침. 

아이들은 학원을 간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굳이 따지면 평균 정도 수준의 난이도다. 그럼에도 중간에 식사를 하다가 그만 먹고 싶다며 수저를 내려놓는 일은 다반사다. 근래 들어 그런 일이 거의 없다가 오늘 아침은 유독 두 아이 다 반 이상의 밥을 남고 싶다 했다. 배부르다는데 굳이 먹이고 싶지도 않았고 기분 좋은 아침을 신경전으로 얼룩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나에겐 적당한 시장기가 몰려오기도 했다.


난 내 앞에 있는 밥이 말아진 미역국 두 그릇을 한 그릇에 합쳤다. 

아이들은 옷을 갈아 입고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난 그 모습을 보며 밥을 먹었다. 젊었을 때는 내가 이렇게 누군가(물론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가 남긴 밥을 아무 거리낌 없이 먹을 거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남겨진 밥을 먹는 그 자체는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남긴 밥이어서 그런지 그리 비참하거나 서럽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 남긴 것을 이렇게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다는 게 사랑의 마음으로 가능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라 하면 비약일까? 

어찌 되었건, 누군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이 남긴 밥을 거리낌 없이 먹게 된 연유이니 그 자체를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밥을 왜 먹었을까?


다시 한번 나는 그 밥을 왜 먹었을까? 왜 먹을 수 있었을까?를 돌이켜 봤다.

바쁜 아침이었다. 그리고 별도로 밥을 차리기보다는 남겨진 밥을 먹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와이프에게 별도로 부탁할 필요도 없고, 그저 수저 하나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 많은 양의 밥을 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밥이 말아진 미역국 안에는 아직도 두툼한 소고기 몇 덩어들이 건재했다. 최근에 탄수화물을 줄이려 많이 노력하는데, 이 밥이 아깝다는 생각 앞에서는 탄수화물 식습관에 대한 의지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부감이 없었다. 아이들이 먹고 난 것이니, 내가 사랑하는 자식들이 남긴 밥이니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남긴 것이므로, 부모인 내가 책임을 지어야겠다는 순간적이고 우습기도 한 책임감이 떠올랐던 것 같다.




아마, 나보다 내 와이프가. 

그리고 내 와이프보다는 우리 어머니가 자식이 남긴 밥을 더 많이 먹고 드셨을 거다. 와이프는 가끔 이야기한다. 아이들 먹을 거 해주다 자신이 살찐다고. 요리하는 사람은 오히려 입맛을 잃는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은 자신이 요리하지 않은 다른 음식일 경우가 있다. 그런데 결국 아이들이 다 먹지 않아 남긴 음식은 손을 댓던 안 댓던 결국 와이프가 먹게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가끔 그리고 또 자주, 와이프에게 외식을 권하는 이유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자 가장 큰 고민거리다. 

좀 더 잘 키우고 싶고, 좀 더 사랑 주고 싶고, 혹시라도 잘못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걱정이 가끔은 마음을 짓누르기도 한다. 하지만 한 번 지어주는 미소에, 어쩐지 의젓하고 듬직해져 가는 모습에, 따뜻하게 서로 안아주는 느낌에 그것들이 한순간에 녹는다. 그리고 그것은 축복이다.

 

내가 번 것을 아이들에게 다 쏟아부어도 결국 내게 돌아오는 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고 각자의 삶을 향해 가면, 서로 피해만 주지 않고 살아도 감사해야 할 거다. 이는 시대를 불문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벌써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당하지 않았나. 나도 그 어렸을 때 우리 어머니께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어드리며 평생 다 할 효도를 했겠지만, 이제는 무뚝뚝하게 제 가정에 집중하는 연락 뜸한 아들일 뿐인 것이다.


아이들이 남긴 밥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내가 결혼 전에 '아이를 꼭 낳아야 하나?'라고 했던 생각에 입에 있던 밥풀들을 뿜을 뻔했다. 

안 낳았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다 커서 남남이 될 아이들이라도, 지금 내게 주는 이 미소와 행복한 시간들의 값어치는 무엇과 비교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먼 훗날, 나의 이 마음을 이해해줄 그때에 아이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벅찬 감정의 일부만이라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걸. 

가족의 이름으로 말이다.


아이들이 남긴 밥이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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