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 의한 망각
출근하는 길이었다.
집에서 회사로 향하는 길의 중간 지점. 운전을 하다 머리를 때리는 깨달음은, 노트북을 넣은 가방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지각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이 무척이나 싫었다. 그 길 내내 자신을 탓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출근길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 일을 저지른 자신에 대한 꾸짖음은 이내 마음과 무의식을 파고들었다.
이는 마음 깊은 곳에 뿌리 깊게 새겨져 '불안'을 형성했음에 틀림없다. 우리가 '불안'에 대해서 살펴봤지만 '불안'은 생존을 위해 하는, 자신을 위한 불쾌한 감정이다. 즉, 다음에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불안'이 형성되고, 같은 상황에 이르러 다시금 실수하지 않게 하기 위해 '불안'은 가동되고 한 번 더 확인하는 행동을 야기한다.
그런데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출근을 위해 차분한 마음으로 운전을 해가는 순간. 다시 머리를 강하게 때리는 깨달음과 불안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아, 노트북 가방!!!'
마음속의 탄식으로 모자라 입 밖으로 소리가 새워 나옴과 동시에,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댔다. 이러한 일이 또 발생한 것에 대한 자학을 시작하기 전, 실낱같은 희망으로 자아의 끈을 놓지 않고자 오른팔을 뻗어 뒷자리를 더듬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노트북 가방이 거기 있었다. 나는 아침에 차를 타면서 노트북 가방을 잘 챙겼고, 그것을 뒷좌석 문을 열어 가지런히 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련의 행동이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마음속 불안이 망각을 야기한 것이다. 즉, 노트북 가방을 챙기지 않았으면 어쩌나라는 불안에 가득 찬 마음이 숨어있다가 어서 그것을 확인해보라며 기억을 지운 것이다. 나는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불안해하고 있던 것이다. 노트북 가방을 가져왔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던 그 순간, 실제로 노트북 가방을 챙기지 않았던 그 경험의 순간이 떠올랐고 불안감은 정말로 내가 그것을 챙겼는지 안 챙겼는지에 대해 복기하는 찰나의 시간마저 주지 않고 바로 확인하게 한 것이다.
정도가 심하진 않지만, 이것을 두고 불안에 의한 '강박'이라 한다. 이러한 가벼운 '강박' 증세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든 쉽게 경험한다. '가스불을 잠갔을까?', '내가 방 불은 끄고 나왔나?', '자동차에서 내릴 때, 내가 잠금 버튼을 눌렀었나?' 등. 실제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거나, 주차했던 곳으로 가 자동차의 문을 열어보는 경우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런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전에 실수를 한 경험이나, 제대로 일처리를 하지 않았을 때의 불안감이 강박을 만들고 망각을 강화한다. 차라리 기억나지 않더라도, 제대로 처리가 된 것인지를 확인하라고 불안은 강박을 자극한다. 다시, 불안은 불미스러운 일이나 이전에 유쾌하지 않았던 그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에서 시작된다.
철렁 내려앉았던 마음이, 오른손으로 노트북 가방이 있음을 확인한 후 제자리로 돌아왔다. 마음이 돌아온 후에도 몇 초간은 핸들을 잡을 수 없었다. 허탈하기도 하고, 스스로에 대한 비웃음이 절로 나와 약간의 시간이 좀 더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참 재미있다. 어디에도 없는 심리학이자, 스스로에겐 그 어떤 이론보다 값어치 있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