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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r 16. 2019

아빠가 되어 쓰는 인문학 편지

언젠가 아이들은 훌륭한 답장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편지는 어느 대상을 향한 메시지다.

메시지는 내 마음과 감정, 그리고 바람을 담는다. 그 대상은 타인이 될 수도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수많은 편지를 써왔고 받아왔다. 편지지에 꾹꾹 눌러쓴 정형적인 편지부터, 스스로 한 다짐, 누군가에게 건넨 쪽지, 또 누군가로부터 받은 수많은 메시지들은 내 마음속 한 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다.


편지를 쓰며 사람은 차분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것을 쓰는 나 자신과 받게 될 상대를 떠올리며. 때론 '답장'을 기대하기도 한다. '답장'에 대한 기대는 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랑하는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렇다. 또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도 마찬가지. 내일의 나에게 보낸 편지가, 어느 성과를 이루어 '기회'나 '보람'이라는 '답장'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자주 쓴다.

어렸을 땐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로 썼고, 성장하는 과정엔 나 자신에게 많은 편지를 써왔다. 물론, 모두에게서 언제나 답장을 받진 못했다. 아니, 답장을 받더라도 '이별'이나 '고뇌', 또는 '좌절'이라는 버거운 답장을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편지를 보냈고 받아들이기 힘든 답장을 받더라도 또 편지 보내기를 반복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내게 남겨진 모든 것들은 그 '답장'들을 기반으로 한다.


내가 편지로 고백하지 않았다면 옆에 없을 사랑하는 아내, 초라하더라도 꾸준히 '글'이라는 '편지'를 써서 어느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세 권의 책이라는 '답장'. 힘든 직장 생활이지만, 미래의 나를 위해 하루하루 버티어 받아낸 '업(業)'에 대한 전문성과 보람, 성과들. 나도 모르게 보냈던 편지들에 대한 답장들이다.


나는 이제 누구에게 편지를 써야 하나.

아이들이 떠올랐다. 내가 받지 못했던, 내가 미리 받았으면 좋았을 편지를 써주고 싶다. 나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다. 대신, 따뜻한 어머니의 편지는 기억한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돌아와 책상 위에 놓인 온기 가득한 어머니의 편지는 나 스스로 어머니에게 좋은 답장이 되고자 하는 다짐의 원동력이었다.


아버지에게서 받지 못한 편지 결핍, 그러나 어머니에게서 받은 따뜻하고 위대한 편지의 힘을 기억하며, 나는 편지를 쓰려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은 어떤 답장을 써가야 할지 고민했으면 한다. 스스로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리고 이 세상을 살다 보면 행복한 일도 힘든 일도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이겨나가야 할지를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그러면 언젠가 아이들은 훌륭한 답장이 되어 돌아오지 않을까. 그 누구도 아닌 소중한 자신들을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라며.


내가 보낸 편지와, 아이들이 보내는 답장 속에.

아이들이 보낸 편지와, 내가 보내는 답장 속에.

아마도 삶의 진실은 빛나고 있을 것이다. 정답을 가늠할 수 없는 힘겨운 인생살이에 대한 답을 그렇게 하나하나씩 찾아가게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쓰려한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내일의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으면 답장 받을 일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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