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동시에 시작된 입덧
내가 임신했을 때 친정엄마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가 너 가졌을 때 입덧은 안했어,
보통 입덧은 친정엄마 따라간다니까 걱정마
철떡같이 믿었다. 그도 그럴것이 세자매 중 나는 성격, 말투, 체형, 목소리,얼굴
모든 것이 엄마와 제일 비슷했고 식성까지 닮아있었기에 당연히 입덧도 안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엄마의 말이 무색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이렇게 토를 많이 할수도 있구나'를 느끼며
입덧의 굴레에 빠졌다.
처음에는 단순히 답답한 정도였다.
아무리 가벼운 음식을 먹어도 속이 울렁거리고 체한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탄산수를 먹으면 어느정도 가라앉았기에 충분히 견딜 수있었다.
하지만 체한것 같은 느낌은 시간이 지날 수록 토를 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았다.
8주가 지나가면서 거짓말하지 않고 나는 먹덧을 제외하고
인터넷에서 설명하는 종류별 입덧 거의 다했다.
토덧: 토하는 입덧
공복덧: 아침에 빈속일 때 토하는 입덧
양치덧 : 양치하면서 토하는 입덧
냄새덧: 특정 냄새를 맡으면 토하는 입덧
침덧 : 침을 모아서 삼키면 토하는 입덧
체덧: 체한것 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토하는 입덧
위산의 잦은역류로 목에서는 피가나고, 이가 흔들리고
잦은 요실금 현상으로 생리대를 착용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나마 직장생활을 하며 업무에 집중하면 순간적으로 입덧이 줄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일에 집중하다 한숨쉬거나 침을 한꺼번에 모아삼키면
어김없이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에 머리를 숙였다.
이때가 임신기간 중에 제일 슬펐다.
우리집 화장실 변기는 나만쓰고, 내가 정리하고, 깔끔히 관리하지만
회사 화장실의 변기는 모두가 쓰고, 덜 정리되어 있으며, 깔끔하지 않았기에
내가 지금 이렇게 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
라는 자괴감이 몰려왔었다.
회사에서의 구토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쉽사리 멈춰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입덧의 구토로 시작했지만, 구토 후엔 나의 흔적에,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나선 이름모를 누군가의 흔적에 계속 구토가 유발 되었다.
병원에 갈때마다 나는 의사에게
입덧은 언제 끝나나요? 끝이 있긴 있어요?
라고 물었고, 의사는 입덧약을 처방해주며
그저 힘내라는 응원의메세지만 전해줄 뿐이었다.
나는 안타깝게도 입덧약의 효과가 매우 크지 않았다.
하루에 10번 토했다면 입덧약 먹은 후에 8번으로 줄었지만
오히려 구토의 양은 한번 할 때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루는 새벽6시부터 오전11시까지 쉬지않고 화장실에서 토했다.
거의 탈수직전에 상황까지 오게되었고 남편이 나를 들처없고
산부인과로 급히 향했다. 입덧방지 링거를 처방받아 수액실에 누워있는데
'임신이 이렇게 힘든건지 알았으면 안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몰라서 하는것이다. 이 모든과정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
마트에서 물건포대기를 들고 있던 남편의 모습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2세를 가지자, 임신하자'라는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액을 다맞고 나오는 길, 퇴근하던 의사는 지친 나를 보며 인자한 미소로
엄마의 양수도, 태반의 길이도, 아이의 발달상태도 더할나위 없이
좋으니 입덧때문에 아이가 잘못될까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입덧때문에 우리아이는 아무 이상없이 잘큰다니
안심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슬펐다.
정말 임신과 출산은 '엄마의 모든 것을 바쳐 아이를 지켜내는 일이구나.'
몸소 체감하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