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차 아르바이트 생
내가 2년이 넘게 근무했던 청년 일자리 **즈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만 19세~34세 미만의 청년을 대상으로 취업, 진로와 관련된 종합적인 서비스가 제공되는 기관이었다. 다시 말해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MZ 세대가 주 고객층으로 당시 작성했던 상담 기록 일지를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MZ 세대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1981년~1996년생 밀레니엄 세대와 1997년~2012년 Z세대를 묶어 부르는 신조어이다. '대학내일'이라는 잡지에서 시작된 해당 개념은 많은 논란이 있었고 2023년 현재는 40대 이상 세대의 관점에서 본인과는 사고관이 많이 다른 요즘 세대 등 현직을 하고 있는 젊은 층을 가리키는 유행어 중 하나이다. 하지만 특정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부정적 의미로 MZ 세대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점, 2023년을 기준으로 초등학생부터 40대 초반까지, 30년의 세월을 인위적인 한 단어로 묶는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점이 있다.
내가 2년 동안 만난 청년층 내담자들의 취업, 진로상담의 공통점은 '괴리감'과 '막연함'이었다.
요즘 MZ 세대 취업관련 뉴스나 기사를 보면 '중소기업 인력 부족', '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의 양극화' 등을 화두로 지금의 청년층들이 중소기업에 취업하지 않으려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넘쳐난다. 기사의 댓글을 살펴보면 '젊은 세대가 눈이 높아서 그렇다.', 'MZ 세대 세대라서 그렇다.', '밥을 안 굶어봐서 세상 물정 모른다.' 등의 부정적인 내용 주를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2020년 그때나 지금(2023년)이나 내가 만난 청년 구직자들은 눈이 높아서가 아니라, 단순히 한 글자에 몽땅 들어가는 MZ 세대라서 가 아니라 '괴리감'과 '막연함'에 취업을 포기하거나 유예하는 경우가 많았다.
2020년 1월, 전문대학 졸업 이후 6년간 아르바이트만 했던 29살 청년이 상담을 요청했다. 기본적인 초기 상담을 끝내고 기업이나 기관에 취업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으니 '취업을 할 수가 없었다.'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전문대학이라도 진학하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성적 맞춰 입학했고, 군대 제대 후 뭐라도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학교에 복학했지만 그냥 막막했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 해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상태에서 자격증, 토익, 봉사활동 등 닥치는 대로 스펙을 쌓고 중소기업, 중견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이곳저곳 지원해 보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아 입사를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돈 벌면서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되지'라고 했지만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돈 만버는 기계 같은 삶은 살기 싫었고 묘하게 '괴리감'느껴지는 중소기업의 근무환경과 여기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대한 '막연함'은 더욱이 취업을 망설이게 만들었다고 했다. 대기업도 수당과 복지가 중소기업보다 나을 뿐 월등히 근무환경이 좋다는 느낌은 받을 수없었다며 이런 현상이 지속될수록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그토록 싫어하던 '돈만 버는 기계 같은 삶'을 살되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아르바이트만 하다 보니 어느덧 6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했다.
문제는 여전히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괴리감'과 '막연함'이 스스로를 아무것도 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었고 30세가 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상담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상담은 이미 고착화된 개인의 생각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사실 너무 어렵다.
어떤 이유에선 6년을 자리 잡은 '괴리감과 막연함'은 단순한 응원과 지지만으로 희석시키기엔 매우 강력하게 내담자의 생각과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었다.어설프게 상담을 이끌었다간 이 역시도 '괴리감'으로 내담자의 마음에 '그럼 그렇지'라는 허탈감을 안겨줄 확률이 매우 높기에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내담자에게
가장 먼저 심어줘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초기상담을 기초로 '내담자가 좋아했고, 좋아하는 것을 찾자'를 상담 목표로 설정했다.
모든 사람은 분명히 좋아하는 것, 즐겼던 것,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 관심 있던 것 등이 1가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기억하고 있는 영유아 시절이었던, 청소년 시절이었던, 어떤 시절이었던 상관없이 무조건 1가지는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그리고 이번 상담은 그 부분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웠다.
1. 내 인생의 보물함 토너먼트 - 살면서 중요(좋음) 하다고 생각한 것 20개 작성(단어)
2. 보물함에 나온 키워드 관련 인물 HISTORY 검색 및 시청
3. 직업가치관 파악하기
4. 1일 1 명언, 아름다운 말 등 필사
위의 방법은 청소년 대상 진로탐색 강의할 때 자주 사용하던 방법으로 스스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그 가치와 관련 인물의 HISTORY를 통해 나와의 공통점, 차이점을 발견하여 동기부여를 활성화시키는 초석을 만드는 작업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할 경우 때때로 유치하게 느끼거나 어이없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함께 작업을 진행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성인들이 깨달음을 얻기도 했기에 이번 내담자에게도 적용하여 상담을 진행했다.
빈 A4용지와 펜과 함께 30분의 시간을 주었다. 처음에는 한 글자도 못 적던 내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20개를 넘어 A4용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인생의 중요한 것, 좋아했던 것들을 작성했고 작성이 완료된 후에는 토너먼트를 통해 하나씩 지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 1위에 선정된 단어는 '뿌듯함'이었다. 이후에는 뿌듯함을 느꼈던 순간을 다시 작성(단어, 문장) 하고 그 순간과 연관된 유명 인물을 함께 찾았다. 타인을 도울 때 가장 많은 뿌듯함을 느꼈던 내담자는 한비야와 같은 유명한 인물의 영상을 검색했고 다행히 2시간 정도 진행된 상담에서 내담자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1차 상담을 종료한 후에 숙제로 1일 1명언, 아름다운 말 등 필사할 것을 권유하며 개인의 진로를 찾는데 작은 원동력이 될 것이라 강조했다. 내담자는 '알겠다.'라는 짧은 답변과 함께 꼭 2차 상담을 신청할 테니 그때도 선생님을 뵐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악수로 상담을 마무리했다.
그 이후 몇 개월이 지나도록 2차 상담 신청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그 해 겨울 청년 일자리 **즈 크리스마스 행사장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내담자는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로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있지만, 이제는 무엇이든 하고 싶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었다.'라며 그동안 연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전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나에게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였다. 나는 살짝 눈물이 고이기도 했지만 고맙다고 말해주는 그에게 나 또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여 훈훈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사실 그와 나의 나이 차이는 2살밖에 나지 않는다. 이 정도 나이차를 알게 되면 일부 내담자는 '당신이 뭘 알아?'라는 눈빛을 보내거나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네가 상담이랍시고 하고 있다니.'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직업상담사로써 나를 존중해 줬고 내 말을 경청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나의 일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어디에서든 그의 앞날을 지지하고 응원할 것이다.
꼭 행복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길 기원하고 또 기원하다.
*상담내용, 시기는 약간의 각색이 있음을 참고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