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껌딱지 Oct 22. 2023

[스펙이 없어요] End. 취업은 왜 해야 하나요

직업상담사로 근무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내용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 편인데. 나는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내담자가 있다. 센터가 개소한지 얼마 되었을 시점에 앳된 얼굴에 20대 초중반 정도의 고객이 방문했다.


인포메이션에서 청년***프렌즈가 어떤 곳인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현장에서 취업, 진로상담을 신청했었다. 상담실에서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내담자는 한껏 격앙된 목소리로 


선생님! 도대체 취업은 왜 해야 해요?


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동안 많은 내담자를 만났지만 가장 신선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이유였기 때문이다.  대학교 입학- 졸업- 취업은 당연한 과정이 아닌가.


약간 당황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내 모습에 내담자는 옅은 미소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내담자는 올해 졸업을 앞둔 대학교 4학년 학생으로 취업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었다. '취업'의 목적이 '돈'을 버는 것이고  '돈'이 목적이라면 굳이 회사에 취업에 하는 것이 아닌 아르바이트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서는 회사 즉 '연봉' 계약을 하는 회사에 취업할 것을 강요했고 의견이 맞지 않아 답답함을 토로했다. 


사실 내담자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자기소개서 내 '지원 동기'를 적을 때 많은 지원자들일 '돈 벌려고 취업하지 다른 이유가 왜 필요합니까!!"라고 속으로 소리 치치 않는가?  생계유지를 위한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해 취업을 한다면 반드시 '회사(기업)'에 취업해야 한다는 주장은 뒷받침할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우리가 취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설령 그 이유가 '돈'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취업에 성공해 회사의 일원으로 일한다는 것은 무수히 많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장래희망이 창업이거나, 특정 분야 프리랜서로 활동한다면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꼭 필요한 요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창업과 프리랜서 또한 대표와 직원, 스승과 제자, 구매자와 판매자 등 하나의 사회적 관계망을 지속적으로 형성하는 것으로 기업의 기초단위인 조직, 단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누구나 '조직(단쳬)'에 속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가 만연한 세상에서  단순히 '돈' 때문만에 취업한다는 것은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이러한 부분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내담자의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지금 당장은 졸업 후 '어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으며, 막연하지만  나중에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공방을 운영하며  마을 소개도 하고, 농사짓는 어르신들의 어려운 일을 도우며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 생기면 반드시 나타난다 홍반장이  장래희망인 것 같았다.


나는 '홍반장'과 관련된 영화와 드라마를 안내하며 이런 사람이 되고 싶은지  재차 물었고  맞는다고 대답했다.   내담자는 '홍반장'을 단순히 시골마을에서 이것저것 도와주는 착한 이웃으로만 인지하고 있을 뿐  그가 얼마나 유능한 인재인지 전혀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정말 우리 내담자의 미래의 꿈이 '홍반장'이라면 지금은 취업을 하기를 권유했다. 


'홍반장'은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것이 대인관계 능력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과 친분 한 관계를 맺고 있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대신해 주기 위해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를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전문가들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을 사람(소비자)에게 연결해 문제를 해결해 준다. 또한 가끔은 거물급 인사들을 만나 부족함 없는 매너와 지식을 뽐내며 유능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번째 뛰어난 것은 다재다능함이다. 마을 전체를 관리하며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 집 수리, 부동산 중개, 인테리어도 하며 골프, 축구와 같은 운동도 매우 잘한다. 심지어 싸움도 잘해 마을의 안전과 보안을 책임지기도 한다. 


홍반장이 이런 능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아르바이트 으로 넓은 대인관계와 여러 기술을 익힐 수 있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대인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신뢰를 쌓으려면 일정한 간격의 만남 속에서 거래와 약속을 통해 신뢰감을 쌓게 되는데 가장 빠르고 기초적인 방법이 기업에 취업하여 회사의 일원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고정적으로 내가 맡은 일을 잘해내고, 거래처와 신뢰를 쌓고, 직급이 높은 사람을 만나 비즈니스 매너를 익히고.나를 소개할 수 있는 명함을 통해 신분을 안정성을 높이면 내가 맡고 있는 전문적인 영역을 시작으로 향후 내가 꿈꾸는 미래와 관계된 사람들까지 그 대인관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신뢰가 쌓여야 관계를 지속할 수 있고 전문성이 높아야 상부상조할 있는 사람이 많아진다. 


또한 홍반장이 가진 다재다능함은  여러 경험에서 비롯돼 것으로 추측되는데  단순한 집 수리는 일반 사람도 책이나 유튜브를 보며 공부할 수 있지만 부동산 중개, 타일 기능사 같은 전문적인 영역은  그 직업의 세계의 속해야만 전반적인 실무를 배우고 익힐 수 있다.  아무 연관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부동산 중개는 이렇게 하는 것이야라고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취업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다양한 부분을 깊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상담 중 으레 많은 취준생들이 '이 일 (직업) 이제 적성에 맞는지 모르겠어요.'라고 고민하는데 이는 해보지 않으면 절대 100% 느낄 수 없기에 최소 기업의 '인턴'이라도 해보며 직접 경험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그 외에도 회사는 '연차'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하루 일을 쉰다고 한들 나에게  오는 불이익이 거의 없는 편이며 (물론, 시급 형태로 일하는 직장인의 경우 연차 사용은 월 급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업무를 보던 중 부족한 부분을 느끼게 되거나 심리적인 안정이 필요할 때  월 급여의 큰 변동 없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취업'의 장점이기도 하다.  


물론 아르바이트라는 일을 낮게 보거나 하찮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배운 기술과 경험은 향후 나에게 좋은 밑거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우리는 밑거름만 계속 쌓는 것이 아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목표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내가 심은 씨앗에 충분한 거름을 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피치 못할 경우가 있어 아르바이트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아르바이트만 해야겠지만  진로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그와 관련된 기업에 취업하여 '직업'을 가짐으로써 더 직접적이고 전문적인 경험을 해보았으면 한다.  


특히 이번 내담자처럼 꿈이 다재다능한 '홍반장'이라면 더욱이 거름만 쌓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을 경험하고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홍반장이 되기 위한 시발점으로는 높은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그만큼 경제적 안정감, 사회적 지지, 소속감, 목표 달성, 자아실현, 사회적 관계 구축 등을 가장 빠르고 강도 높게 경험하고 내면화 시킬 수 있는 '취업'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기를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취업이 꼭 필요하다고 말하는 필자지만,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었고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꽤 많다. (직장 갑질을 매우 심하게 당했기 때문에) 


하지만 이는 '취업'이 문제가 아니라 '조직과 사람'이 문제였고 몇몇 '조직'에서는 이를 인지해 조치를 취해 준 경우도 있었기에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돈이 단순한 목적일지라도 기업에 취업하는 그 자체를  선택지에서 배제해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업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에게 '이 일은 나랑 안 맞네?'를 가르쳐 줄 수 있고 '이런 회사와 사람은 피해야지'를 알려줄 수 있으며  '나'라는 사람을 가장 객관적이고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상담 내용, 시기는 약간의 각색이 있음을 참고 바랍니다.






이전 10화 [직업상담이야기] case 8. 아무것도 하기싫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