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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Oct 24. 2024

맥주 안 마시는 옥토버페스트

대체로 우중충하다가 잠깐 갠다면



콘텐츠 회사에 다닌 지 2년 차가 됐다. 신입으로 바쁘게 보낸 기간이 지났고 이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아가는 단계였다. 나는 콘텐츠 업계인으로서 좀 재밌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새로운 콘텐츠를 보고 싶었다. 10월 유럽 여행에서 뮌헨은 단 하나의 일정뿐이었다. 


독일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이 세계적인 광란의 축제에 오기 위해 몇 달 전 비행기를 예약했고, 거기서 뽐낼 ‘드린들 Drindle’ (독일의 여성 민속 의상. 가슴이 파인 원피스 형태)을 미리 주문해 뒀다. 주변 술꾼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어떤 축제인지 궁금했는데 진짜로 가버리네.” “내 버킷리스트였는데… 후기 말해줘.” 나는 호기롭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겠다며 떠났다. 드디어 한국인으로서 독일인 흉내를 내볼 수 있겠군. 



비행기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옥토버페스트의 유래에 관해 공부하며 때웠다. Oktober Fest는 10월의 축제라는 뜻으로,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16일간 열린다. 1810년 바이에른공국의 왕 루드비히 1세의 결혼식 겸 성대한 축제를 연 것에서 발전한 것이다. 축제 첫날 행진 퍼레이드가 있고, 정오에는 뮌헨 시장이 맥주 통을 개봉하며 축포를 울린다. 뮌헨의 6대 맥주 회사를 비롯해 30여 개 회사가 천막을 열고 700만 명의 관광객을 맞이한다는 곳. 거기서 어떤 장면들을 보게 될까. 




도착하는 대로 숙소에 짐을 부리고 전통 의상을 입고 나섰다. 축제장으로 향하는 도로부터 벌써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악단의 음악 소리도 들렸다. 입장 게이트는 성수기 에버랜드도 비할 바가 못 되는 엄청난 스케일이었다. 입구 너머 축제의 세계로 진입하니 화려한 천막과 깃발들이 펼쳐졌다. 현대적인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모두가 그림 형제 동화에서 튀어나온 장난감이었다. 조명과 전구가 발명된 시대의 동화. 천막에서는 피리 부는 소년, 양치기와 목각 인형들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나는 휘황찬란한 거인 나라에 떨어져 감탄하는 소인이 되었다. 


여러 천막 중 몇 군데를 들춰보며 어디에 자리 잡을지 고민했다. 제각기 천막 안을 어디까지 꾸밀 수 있나 경쟁하는 듯했다. 어떤 곳은 초록 풀빛으로 물들였고 켈틱스러운 음악이 나오는데, 다른 천막은 서커스 풍, 또는 어두운 보랏빛 조명에 테크노 비트가 흘렀다. 상상 그 이상의 카니발이었다.  




사실 나는 맥주를 안 좋아한다. 맛있는 줄도 모르겠고 취하지도 않고 배만 불러서다. 내게 이 축제는 유흥보다는, 민속학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술이 아닌 문화 체험이 주였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한 잔은 기분으로 마셔야지 싶었다. 찜해놓은 천막 중 가장 큰 ‘호프 브로이(Hofbräuhaus)’에 들어갔다. 2L는 부담스러워서 “여기 0.5L나 반 병짜린 없나요?” 물어보려 했으나, 둘러보니 제일 작은 기본이 2L였다. 양조 회사마다 기본적인 대표 맥주 한 종류만을 팔고 있었다. 이런 데서도 근본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내 입맛에도 이곳의 맥주가 유독 맛있다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축제용 맥주는 알코올 도수가 5~6% 정도로 살짝 높다던데 높을수록 맛있는 걸까. 기포가 혀에서 알싸하게 퍼지고 레몬 향은 깔끔했다. 홀짝홀짝 목을 축이고 본래 목적인 문화와 풍습들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점원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2L짜리 맥주잔을 한 손에 6개씩, 총 12개를 들고 흔들림 없이 돌아다녔다. 곳곳에서 2L 잔을 들고 원샷 대결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천막 주변 거리에는 번쩍이는 놀이기구들이 즐비했다. 공중그네, 바이킹 같은 것들. 어꺠동무를 하고 함성을 지르는 사람들 때문에 한 발짝마다 혼이 빠질 것 같았다. 덩치 큰 게르만족들이 비틀거리며 내 곁을 지나면 그 휘두르는 주먹에 부딪힐까 봐 몸을 숙였다. 동양인 여자가 돌아다니는 것이 신기했는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거나 웃으며 말 거는 현지인들도 있었다. 



간이 상점들도 알록달록 유혹적이었다. 웡카의 초콜릿 공장처럼 번쩍이는 초콜릿과 사탕들로 가득한 나라. 하트 모양으로 꾸민 아이싱 쿠키를 너도나도 목에 걸고 다녔다. 독일 전통 음식인 소시지를 파는 상점도 많았는데, 커리 부어스트 (소시지를 데치고 카레 소스를 부은 음식)의 이국적인 향을 이기지 못하고 7달러짜리 하나 시켜 스탠딩으로 먹었다. 밍밍한 카레 소스가 소시지의 느끼함을 잡아줬고, 감자튀김도 곁들이니 한 끼 식사로 든든했다. 





옥토버페스트는 생각보다 글로벌 축제가 아닌 로컬 축제였다. 민속 의상을 입은 독일인들이 90%는 돼 보였다. 민속 음악 연주에 심취해 몇백 명이 다 같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떼창을 했다. 마치 몇 만 관중의 축구 경기 응원석 같았다. 독일인들이 이렇게 흥이 넘치는 민족일 줄이야.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가사도 모르는 우리 외국인들은 벙쪄 있었다. 이방인으로서의 자신을 꼼꼼히 인식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매년 옥토버페스트에 오는 민족과 평생 한 번 별러서 온 사람들은 피부터, 목청부터 달랐다. 독일인들의 피엔 양조장들의 맥주가 흘렀던 것이다.  



외국에 나가면 유달리 뭉치곤 하는 한국인 무리가 용케 나를 알아보고 끼워주었다. 6명의 한국인 중 나 말고는 전통 의상을 입지 않았다. “그 옷 어디서 사신 거예요? (대체?)” 하며 다들 신기해했다. 드러난 가슴골이 독일 여성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지만 한국인들 사이에 있으니 민망해져 외투로 가렸다. 우리는 겨우 자리를 잡고 맥주를 홀짝였다. 모국어로 소소하게 ‘건배’도 하고 ‘프로스트!’(Frost, 독일어로 ‘건배’)도 외쳐보는 밤이었다. 이 난장판을 매일 어떻게 다 치우지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술도 마셨겠다, 놀이기구를 하나 골라서 탔다. 나는 또래 한국인 여성과 오붓하게 관람차를 탔다. <비포 선라이즈> 속 한 장면 – 오스트리아의 놀이공원에서 관람차를 타는 - 같았다. 밤 10시쯤 됐으려나, 거대하고 빛나는 천막들을 위에서 바라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북유럽 신화 속 여러 부족들이 전쟁하기 전날, 천막을 쳐놓고 부대를 정비하는 광경 같았다. 인간의 천막 말고 바이킹족 신들의 천막으로 쳐야 당신이 상상하는 규모가 맞을 것이다. 


전쟁 무기는 게르만족들의 맨 손이고, 상비 식량은 맥주여서 맥주 통을 끝없이 정렬해 놓은 풍경. 피비린내가 아닌 맥주 비린내와 취객들의 토사물 냄새만이 풍기는 이 전쟁 같은 축제를, 나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맨정신으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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