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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과 기억

지속durée


『물질과 기억』은 난해해요. 철학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바로 읽어내기 쉽지 않아요. 베르그손의 주요 개념들을 먼저 파악하고 원문으로 들어가는 편이 좋겠습니다.      


순수한 지속은 자아를 그 자체로 그냥 살아가게 내버려두고이전 상태에서 현재 상태를 분리하지 않을 때우리의 의식 상태들이 존재하기 위해 취하는 형식이다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대한 시론」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의 철학에서 ‘지속’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합니다. 베르그손은 시간을, ‘공간화된 시간’과 ‘지속’으로 구분해요. ‘공간화된 시간’은 무엇이냐? ‘수학적인 시간’이에요. ‘수학적인 시간’은 동질성을 갖습니다. ‘나’와 타자의 시간이 일치하는 동질성. ‘수학적인 시간’은 단위로서의 시간이기에 양의 영역이죠. ‘수학적인 시간’의 ‘양’은 어디서나 ‘동질’하니까요. 반면 ‘지속’은 ‘체험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 시간(지속)은 다질성을 갖습니다. ‘나’와 타자의 시간이 같지 않은 다질성. ‘체험적 시간’은 질의 영역입니다. 이는 전혀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직장의 시간’과 ‘연애의 시간’을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같은 8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과 보내기도 하죠. 분명 그 둘의 ‘공간화된 시간’, 즉 ‘수학적 시간’은 동일합니다.(동질성) 하지만 ‘체험적 시간’은 전혀 다르죠.(다질성) 직장에서의 8시간은 8일처럼 더디 가고, 연인과의 8시간은 8분처럼 쏜살같이 지나갈테니까요.  



 베르그손은 ‘생명은 시간 속에서 행동하는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베르그손은 인간(생명)이 시간 속에서 행동하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의아한 말이죠. 베르그손이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공간화된 시간’을 말해요. 즉, 베르그손의 말은 어떤 생명도 ‘공간화된 시간’, 즉 ‘수학적인 시간’ 속에서 행동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볼게요. 원생동물(아메바)에서 다세포 동물로 진화하면서 인간이라는 복잡계를 형성했잖아요. 그 사이의 흘러간 시간은 '공간화된 시간'이 아니에요. 물리적인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된 게 아니에요.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지속’의 시간을 통해서만 생명이 진화하는 거예요. 아메바는 자신의 옆을 지나는 먹이(영양분)을 수동적으로 섭취할 수밖에 없죠. 하지만 그 아메바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먹이를 먹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를 가질 수 있죠. 그 강력한 욕구의 시간이 쌓일 때, 다세포 동물로 진화(촉수→더듬이→시각기관…)하게 되죠. 또 그 다세포 동물이 다시 더 적극적으로 생명을 이어 나가고 싶다는 강력한 욕구를 가질 때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 강력한 욕구의 시간이 바로 ‘지속’이에요.  

    

 이처럼, 모든 생명은 ‘지속’을 통해서만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는 거예요. 이는 거창한 진화 과정이 아니라 소박한 일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죠. 직장에서 근무하는 8시간과 연애하는 8시간 중 언제 사람이 더 많이 바뀌겠어요? 직장에서는 8시간, 아니 800시간을 보내도 질적인 변화는 거의 일으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8시간은, 어쩌면 8분도 그 사람 전체를 다 바꿔낼 수 있어요. 누구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수학적인 시간’이 아닌, 오직 ‘나’이기에 온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는 ‘다질적인 시간’이 바로 ‘지속’이에요. 


    

몰입의 섹스, 지속의 섹스

 그런데 사실 이런 설명으로는 ‘지속’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워요. ‘지속’을 ‘몰입’이라는 개념과 혼돈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속’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몰입’이라는 개념과 결을 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몰입’은 흔히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재(지금)를 의미하죠. 하지만 ‘지속’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지속’은 과거- 현재-미래의 응축(물론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이에요. 


 ‘섹스’를 생각해볼까요? ‘몰입’의 섹스는 원나잇 섹스라고 말할 수 있죠. 반면 ‘지속’의 섹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라고 말할 수 있어요. 이 둘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몰입’은 동물적인 것, 소리와 같아요. 누군가 옆에서 “악!” 소리를 지르면 순간적으로 빠져들잖아요. ‘몰입’은 현재(지금)에만 있는 것이에요. 반면 ‘지속’은 ‘음악’이에요.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마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전 음을 기억하고 지금 음을 듣고 다음 음을 예상하는 거잖아요. 그 작업들이 순식간에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되는 거잖아요. 음악은 그렇게 듣게 되는 거죠. 


  우리가 흔히 ‘그 음악이 좋다’라고 했을 때, 듣는 순간(지금) ‘좋다’라고 느낄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최소한 세 개의 음이 나와야 해요. 5분간의 교향곡을 듣는다고 상상해 봅시다. 시작하는 그 순간(첫 음)에는 아무 느낌이 없죠. 두 번째 음이 나와서 그게 과거가 되고, 세 번째 (미래)에 어떤 음이 나올지 예상한 음과 맞추어 보는 그 총체적인 과정을 통해 음악을 느끼잖아요. ‘지속’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하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한 사람과 지속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음악 듣는 것처럼 한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그 사람의 살았던 과거, 살아갈 미래, 그것이 그 사람의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이 되어 그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반대로, 나를 매혹하는 사람이 있는데, 분명히 매혹된 것 같은데 만난 후에 슬퍼지는 사람이 있죠? 대표적으로 섹스만 좋은 사람이 그런 경우죠. 그 사람은 ‘소리’예요. 나에게 순간적으로 소리를 질러서 나를 집중시키고 현재에 있게 해 주지만 그걸로 끝인 거예요.  


 진짜로 매력적인 사람은 어떤가요?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되게 하는 사람이죠. 즉, 내 과거의 기억들이 그 사람을 통해 환기되고, 동시에 그와 함께 할 미래가 현재 그 사람을 만나는 순간 속에서 응축되는 사람이죠. 그렇게 과거의 상처도, 미래의 불안도 그 사람과 함께 하는 현재 속에서 응축되어 음악이 되게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정으로 매력적인 사람이죠. 진짜로 기쁜 섹스는 그런 관계 아래서 이루어지는 섹스죠.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되는 음악과 같은 섹스. 


 ‘지속’을 단순히 ‘지금’ ‘현재’ ‘몰입’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는 베르그손이 말한 ‘지속’이 아니에요. 잘 모르겠으면 이렇게 외웁시다. ‘몰입’은 ‘소리’ ‘지속’은 ‘음악’.     



기억

 

『물질과 기억』에서의 ‘기억’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는 ‘지속’과 깊이 관련된 개념이에요. 베르그손이 말하는 ‘기억’은 ‘지속’하는 존재들의 ‘기억’입니다. 베르그손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생명체 논의에 집중합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지속’하는 것만 ‘기억’이 있어요. 이 ‘기억’은 생명체와 관계되어 있어요. 베르그손은 ‘기억’이 생명체의 지각과 의식을 만들어 낸다고 말합니다. 

 

 생명체와 비非생명체를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돌멩이와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요? 돌멩이는 ‘지속’은 없고 ‘몰입’밖에 할 수 없어요. 즉 돌멩이에게는 ‘현재(지금)’ 밖에 없어요. 물론 돌멩이에게도 과거도 있고 미래도 있겠지만, 그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할 순 없을 겁니다. 돌멩이는 그저 지금 외부 상황들에 반응할 뿐이죠. 돌멩이는 바람이 불면 풍화되는 반응만 할 수 있을 뿐이죠. 비생명체(돌멩이)는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지속)할 수 없기 때문에 ‘기억’도 없습니다. 


 반면 생명체는 ‘지속’하죠, 즉,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떤 생명체이든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합니다. 해바라기가 햇볕 쪽으로 기우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중심을 응축(지속)한 결과입니다. 또한 늑대들이 안전한 곳과 위험한 곳을 구분하는 것 역시 과거와 미래를 현재를 중심으로 응축(지속)한 결과입니다. 이런 생명체의 ‘지속’은 ‘기억’을 통해 가능하죠. 


 ‘기억’은 단순한 과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이며, 현재이며 동시에 미래이기도 합니다. 상한 음식을 먹은 기억이 있다고 해봐요. 그것은 단지 과거의 일인가요? 그렇지 않죠. 그 ‘기억’은 현재 상한 음식을 먹지 않게 해주고, 그로 인한 건강한 미래를 이미 내포하고 있지 않나요? 이처럼 생명체는 ‘기억’을 통해 ‘지속’할 수 있어요. ‘기억’이라는 테마가 나오면 ‘지속’된 존재들의 ‘기억’인 거예요. 비 생명체는 ‘기억’이 없기 때문에 ‘지속’할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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