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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손은 누구인가?

베르그손은 누구인가?


 『물질과 기억』에 대한 본격적인 강독에 들어가기 전에 베르그손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앙리 베르그손(1859년~1941년)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철학자입니다. 1896년 주저 『물질과 기억 Matiére et Mémoire』를 시작으로, 『창조적 진화 L'Évolution Crèatrica』(1907)를 발표했어요. 뒤이어 발표된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la Religion』(1932년)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베르그손은 이런 저작들을 통해 19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철학자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시간’에서 ‘공간’으로


 철학사적으로 베르그손이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삶의 진실이 ‘공간’이 아닌 ‘시간’에 있다고 밝혀냈다는 데 있습니다. 서양철학에서 형이상학(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은 긴 시간 공간 중심적이었고, 지금도 일정 정도 그런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삶의 진실은 공간에 있지 않아요. 낯선 질문을 하나 해봅시다. ‘공간’이 ‘시간’에 종속되는 걸까요? 아니면 ‘시간’이 ‘공간’에 종속되는 걸까요? 즉, ‘공간’과 ‘시간’ 중 무엇이 더 근본적일까요? 


 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다시 찾아가 본 적이 있을까요? 옛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 그 건물이 사라졌거나 공터였던 곳에 새 건물이 세워져 있을 겁니다. 이때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를 모두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면 두 요소의 변화 중 어느 것이 더 근본적인 걸까요? 공간의 변화(사라지거나 생긴 건물) 때문에 시간이 흐른 것인가요? 그렇지 않죠,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공간의 변화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처럼, ‘공간’과 ‘시간’ 중 더 근본적인 것은 ‘시간’입니다. 

 

 베르그손은 공간 중심으로 논의되었던 형이상학을 시간 중심으로 돌려놓은 거예요. 이것이 베르그손 철학의 중심 주장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베르그손은 당대 자연과학의 업적들을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생명과 생성의 형이상학을 완성합니다. 그는 생명 현상은 ‘창조적 진화’나 ‘생의 약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어요.      



이원론二元論

   

 베르그손의 사유는 형이상학적이에요. 쉽게 말해,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합니다. 하지만 베르그손은 자신의 철학을 추상적 개념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자연과학적인, 즉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이용해 자신의 형이상학적 철학을 설명합니다. 『물질과 기억』에서도 학창 시절 배웠던 과학 혹은 수학 용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베르그손의 형이상학은 독특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의 형이상학이 관념론적인데 반해 베르그손은 그렇지 않습니다. 베르그손은 구체적인 것(실재론)을 통해 추상적인 것(관념론)을 설명하고, 추상적인 것(관념론) 안에서 구체적인 것(실재론)을 밝혀내죠. 베르그손의 형이상학은 관념론과 실재론을 다 아우르는 형이상학자인 셈입니다. 이런 독특한 형이상학은 ‘이원론’적입니다.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은 정신의 실재성과 물질의 실재성을 인정하며기억이라는 한 명확한 예를 통하여 그 둘 사이의 관계를 결정하려고 시도한다따라 이 책은 분명 이원론적이다물질과 기억』 앙리 베르그손  

  

 베르그손은 ‘이원론二元論’자입니다. 이원론은 정신(사유)과 물질(신체)이라는 두 가지 실체가 별도 존재한다는 이론이에요. 이는 ‘인간은 몸(신체)도 있고 생각(정신)도 있다’는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에요. 베르그손은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질적인 ‘신체’처럼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정신’(마음)과 ‘물질’(신체)은 모두 실제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베르그손 철학의 독특한 점입니다.     

 

 베르그손은 어떤 유물론자보다 확실하게 물질적(구체성)인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어떤 관념론자보다 철저하게 형이상학(추상성) 안에서 다룹니다. 베르그손은 “물질의 실재성”을 인정합니다. 즉 우리 앞에 꽃이 한 송이 있다면 그 꽃이 갖고 있는 물질적인 특성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베르그손은 “정신의 실재성” 역시 인정합니다. 즉 인간이 그 꽃을 보고 갖게 되는 어떤 정신적 상태 역시 (관념이 아닌) 실재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베르그손은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체’처럼 실제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설명하겠지만, 베르그손은 ‘기억’이라는 주제를 통해 ‘정신’과 ‘물질’이 모두 실재한다는 이원론을 논증합니다. 이 난해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 글을 다 읽으실 때 즈음에 조금 더 잘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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