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형’ 이별 VS ‘연착륙형’ 이별

이별의 아픔에서 벗어나는 방법 II

‘추락형’ 이별 VS ‘연착륙형’ 이별
“오늘 어디 가냐?”
“여자 친구 만나러”
“뭐? 저번 주에 헤어졌잖아”
“그렇긴 한데, 자기 마음 정리될 때까지만 한 번씩 만나 달래서"


이별의 슬픔을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아픈 이야기는 아픈 이야기다. 이별은 아무리 부드럽고 친절하게 말한다고 해도 아프다. 그래서 이별은 대체로 ‘그만 헤어져. 이제 연락하지 마!’라고 말하는 ‘추락형’이다. 이별을 말하는 순간을 기점으로 순식간에 곤두박질 쳐서 사랑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그런 이별이다. 이 추락형 이별은 잔인하지만 이별을 가장 빨리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하다. 조금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이별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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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추락형 이별만이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별해야 할 때면 추락형 이별을 통보했고, 추락형 이별을 통보 받을 때도 감당하려고 애를 썼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아도 추락형 이별이 좋았다. 추락형 이별은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는, 단호박 이별이기에 잔인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별을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친구가 ‘헤어진 여자 친구를 한동안 만나 주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내 대답은 ‘지랄한다.’였다.


그런데 이별에는 단호박의 추락형 이별만 있는 건 아니다. ‘연착륙형’ 이별도 있다. 이 이별은 ‘헤어지자’고 말하고 난 뒤에도 어느 정도 연락도 하고 가끔 만나기도 하면서 서로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갖는 방법이다. 한 때 나는 이 방법이 ‘지랄’이라고 생각했다. 미련만 더 남기고 그 때문에 더 아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 이별을 감당하지 못해 징징대는 아이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연착륙형 이별도 괜찮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다르다. 이 연착륙형 이별 역시 이별의 아픔을 줄이는 데 나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이별을 말하는 사람은 담담하게 이별을 말하지만, 그 이별을 통보 받는 사람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고 하늘이 노래지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이별을 먼저 말하는 사람이 조금 더 담담할 수 있는 이유는 먼저 마음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직 이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상대에게 연착륙할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안 그러면 상대는 정말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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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착륙형 이별도 쉬운 게 아니다. 창피한 고백 하나. 헤어지자고 통보한 여자 친구에게 “그러지 말고 몇 번만 더 만나보자”라고 매달린 적이 있다. 배려였는지 동정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그러자고 했다. 두 번을 더 만났다. 그 두 번의 만남을 이리 표현하고 싶다. 확.인.사.살. 사랑이 식어버린 연인과 연락하고 만나는 연착륙은 추락보다 잔인했다. 그녀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음을 재확인했고, 그 재확인은 나를 더 비참하게 했다. 그때 알았던 것 같다. 나에게는 연착륙형 이별은 잘 맞지 않는다는 걸.


하지만 누군가에 연착륙 이별은 필요하다. 연착륙 이별 자체가 이별의 아픔을 덜어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연착륙형 이별이 추락형 이별보다 더 괴롭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어느 쪽이든 이별의 아픔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뭐든 못할 방법이 뭐가 있겠나. 그런 의미에서 이별을 통보하려는 이들에게 부탁하나하자. 상대가 연착륙 이별을 원하거든, 가급적 그리 해주시기를. 동정이든, 배려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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