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면 행복할까요?"

허무주의적 삶, 염세주의적 삶을 넘어

간절히 원하는 일을 이루면 행복할까?

“저 직장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저 사람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꿈을 간절히 원하는 어떤 일이라고 하자. 많은 이들은 꿈이 있다. 하지만 꿈을 가진 이들은 모른다. 간절히 바라는 꿈이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일 수 있다는 걸.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은 고되다. 짝사랑을 하는 시간은 힘들다. 하지만 그들은 간절히 원하는 일들을 꿈꾸고 있기에 행복하다. 취업만 하면, 사랑할 수만 있다면 행복한 삶이 펼쳐질 것을 결코 의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꿈을 이뤄본 사람은 안다. 어떤 꿈은 그냥 꿈으로 남겨두는 게 더 행복하다는 걸. 꿈을 이룬 세 명을 알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게 된 이. 오랜 시간 짝사랑했던 사람과 연애를 하게 된 이. 이들은 간절히 원했던 일을 이뤘다.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네들의 삶은 이내 답답하고, 공허하고 권태로워졌다. 물론 모든 꿈이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꿈은 그것을 이루고 난 이후에 더 큰 기쁨을 느낀다. 그런 꿈도 분명 있다.

허무주의적 삶, 염세주의적 삶을 넘어

하지만 꿈의 실현이 기쁨으로 찾아오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답답해하는 직장인, 공허해하는 부자들, 권태로움을 느끼는 연인들. 그 넘쳐나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다들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이룬 사람들 아닌가. 간절히 원했던 일들의 실현은 답답함과 공허함, 그리고 권태로움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이것이 많은 이들이 나이가 들어, ‘인생은 의미 없다’는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불행을 정당화’하는 염세주의자가 되는 이유다.

왜 안 그럴까? 그토록 노력해서 꿈을 이뤘는데, 그 끝에 답답함, 공허함, 권태로움이 있음을 확인했으니까 말이다. 그때, ‘인생은 의미 없어’라고 말하는 허무주의적인 사람이 되거나, ‘다들 그렇게 살잖아’라고 말하며 불행을 정당화는 염세주의적인 사람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결국 꿈의 실현이 주는 슬픔 때문에 많은 이들 허무주의자가 되거나 염세주의자가 되는 셈이다.

그러니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꿈을 이루는 방법 따위가 아니다.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꿈의 실현이 뒤에 찾아오는 슬픔에 대해서 고찰해봐야 한다. 그 슬픔에 대해서 고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허무주의적 혹은 염세주의적 삶으로 너무 쉽게 끌려 들어간다. 지독히도 불행한 그 삶 말이다. 진정으로 삶을 긍정하고 싶다면, 불편한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이 질문을 결코 우회할 수 없다. “꿈을 이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스피노자의 ‘의욕’과 ‘욕망’

“꿈을 이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 스피노자는 이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답해줄까?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일을 이뤘는데 도대체 왜 답답하고 공허하며 권태로움을 느끼게 되는 걸까? 스피노자는 이에 대해 먼저, ‘의욕’과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답해줄 것이다. 이는 논리적으로 정확한 진단이다.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일을 실현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바로 ‘의욕’과 ‘욕망’이다. 원하는 것에 대한 ‘의욕’과 ‘욕망’

우리가 원하는 것들, 예컨대, 취업, 돈, 사랑, 명예 등을 생각해보자. 그것을 이루게 하는 힘은 그것들에 대한 의욕과 욕망에 달려 있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간에, 꿈의 실현 뒤에 오는 찾아오는 감정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도식을 따라야 한다. ‘의욕·욕망→꿈의 실현→감정’ 달리 말해, 인간이 가지게 된 ‘의욕’과 ‘욕망’의 기원이 어디인지를 묻지 않고는 꿈의 실현과 그 실현 뒤에서 느끼게 되는 감정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스피노자는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인간은 자신의 의욕과 욕망을 의식하고는 있으나, 자신들로 하여금 원하고 욕구하도록 결정한 원인들을 알지 못하기에, 꿈에서조차, 그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들을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에티카, 제 1부, 부록)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의욕과 욕망은 분명히 의식한다. 하지만 그 의욕과 욕망이 어떤 원인에 의해서 생성된 것인지는 꿈에서 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취업하고 싶은, 돈 벌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의욕과 욕망이 있을 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인간의 의욕과 욕망은 전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욕과 욕망은 외부원인(“결정한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은 그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난해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스피노자의 사유체계를 살펴보자.

스피노자의 사유체계

“모든 개물은, 즉 한정된 존재를 갖은 유한한 모든 것은, 마찬가지로 한정된 존재를 가지는 유한한 다른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지 않는 한 존재할 수도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그리고 또, 이 원인도 한정된 존재를 갖는 유한한 다른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지 않는 한 존재할 수도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무한히 반복된다.” (에티카, 제 1부, 정리 28)

스피노자는 개물(개개의 물체들)은 한정된, 유한한 존재를 말한다. 컵, 종이, 연필, 책과 같은 것들을 개물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이런 개물은 다른 원인에 의해 영향을 받지 못하면 존재할 수도 작용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다. 컵·종이·연필·책은 종이라는 외부원인이 없다면 존재할 수도 없다. 종이 역시 나무라는 외부원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나무 역시 물과 토양이라는 외부원인이 없으면 존재할 수도 작용할 수도 없다. 이와 같이 무한히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개물이 존재하게 된다.

스피노자의 사유체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개물에는 컵·종이·연필·책과 같은 물질적인 존재들뿐만 아니라, 생각(관념)·의욕·욕망과 같은 비물질적인 존재들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스피노자는 생각(관념)·의욕·욕망·감정 역시 물질적 개물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용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빈틈없는 논리로 증명했다. 즉, 생각(관념)·의욕·욕망·감정 역시 그것을 불러일으키고 존재하게 하는 외부 원인이 있고, 그것은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인간의 생각(관념)·의욕·욕망·감정은 자유롭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한다. 사실 이것은 논리적 증명 없이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생각, 의욕, 욕망, 감정이 미묘하게 혹은 현격하게 다 다르다. 이는 그 사람이 부딪혔던 외부원인이 다 달랐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어떤 환경(외부원인)에 놓여 있었느냐에 따라 그의 생각, 의욕, 욕망, 감정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어떤 개물이든 "다른 원인에 의해 존재하고 작용하도록 결정되지 않는 한 존재할 수도 작용하도록 결정될 수도 없다"

나의 ‘의욕’과 ‘욕망’의 원인을 찾아서.

이제 우리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꿈을 이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에 스피노자는 이렇게 되물을 것이다. “너희들은 취업하고 싶은, 돈을 벌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의욕과 욕망을 의식하고 있지? 그리고 직장, 돈, 사랑에 대한 의욕과 욕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하지만 너희들은 그 의욕과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으냐?”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간절히 원했던 일을 이루고 난 뒤에 찾아오는 슬픔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대기업에 가고 싶었다. 너무 간절히 원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를 했다. 합격 전화를 받은 찰나의 기쁨을 지나자 길고 깊은 슬픔이 찾아왔다. 직장생활 내내 답답했고, 공허했다. 나는 이제 왜 그런 슬픔이 찾아왔는지 알고 있다. 대기업을 향한 의욕과 욕망을 작용하고 존재하게 했던 외부원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외부원인은 ‘안정적이고 돈 많이 주는 직장이 최고야’라고 말했던 부모, 친구, 선배들의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사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너무 간절히 원했다. 우여곡절 끝에 연애를 시작했다. ‘그래 사귀자’라는 문자를 받은 찰나 기쁨이 지나자 길고 깊은 슬픔이 찾아왔다. 그녀와 연애를 하는 동안 외로웠고 권태로웠다. 나는 이제 왜 그런 슬픔이 왔는지 알고 있다. 그녀를 향한 의욕과 욕망을 작용하고 존재하게 한 외부원인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 외부원인은 작은 오해로 놓쳐버린 옛사랑이었다. 그녀를 그토록 원했던 의욕과 욕망은, 놓쳐버린 옛사랑의 그녀와 닮았기에 작용하고 존재하게 된 것이었다.

이루면, 기쁨을 주는 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의욕’과 ‘욕망’이 아니다. 달리 말해, 간절한 꿈이 있을 때, 그 꿈에만 시선을 고정시켜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욕과 욕망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면, 그 의욕과 욕망에 휩쓸려 살게 된다. 돈, 명예, 권력 같은 세속적인 꿈에 휩쓸려 사는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 슬픔에 빠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자신의 의욕과 욕망을 자신의 의욕과 욕망을 의식하고는 있으나, 자신들로 하여금 원하고 욕구하도록 결정한 원인에 대해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때 간절했던 꿈을 놓아버렸다. 직장을 그만두었고,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꿈을 이루었다. 글 쓰는 것을 직업을 하게 되었고, 전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꿈의 실현 뒤에는 답답함, 공허함, 권태로움이 찾아오지 않았다. 글을 쓰고, 새로운 사랑을 하면서 나는 경쾌하고, 충만하며, 설레는 삶을 살고 있다. 스피노자 덕분이다. 의욕과 욕망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의욕과 욕망을 결정한 외부원인을 찾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속에 존재하는 많은 의욕과 욕망이 휘둘리지 않는다. 의욕과 욕망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정직하게 말해, 내 속에는 여전히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유명해지고 싶은 의욕과 욕망이 있다. 그걸 부정할 순 없다. 하지만 그 의욕과 욕망을 맹목적으로 좇지 않는다. 그 의욕과 욕망을 있게 한 외부원인을 고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의욕과 욕망을 잘 다룰 수 있다.

꿈을 실현하려는 노력만큼, 그 꿈에 대한 의욕과 욕망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야 한다. 어떤 외부원인으로 인해서 그 의욕과 욕망이 생겼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 외부원인을 하나씩 찾아갈 때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그저 의욕과 욕망에 휩쓸려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해줄, 의욕과 욕망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찾게 된 꿈은, 그 꿈을 실현하더라도 답답함, 공허함, 권태로움을 동반하지 않는다. 그런 꿈의 실현은 반드시 경쾌함, 충만함, 설렘이라는 기쁨의 감정을 선물한다. 믿어도 좋다. 앎과 삶 모두에서 확인한 삶의 진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