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바타유 '파멸'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바타유의 사유의 대상을 우리의 몸으로 바꿔서 생각해보자. 다이어트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할 수 있다. 과도하게 비만인 아이들이 있다. 비만이 무엇인가? 그것은 과잉 에너지의 결과다. 키가 자라고 뼈가 튼튼해 질 때까지 영양분(에너지)가 필요하다. 섭취한 영양분은 몸이라는 체계가 성장하는데 사용된다. 하지만 그 아이의 키와 뼈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성장에 흡수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는 아이가 비만이 된다.
비만이 무엇이 문제인가? 육체적 문제와 정서적 문제가 있다. 육체적 문제는 무엇인가? 비만인 아이가 계속 과도하게 영양분을 흡수하면 어떻게 될까? 뼈가 체중을 버티지 못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정서적 문제는 무엇인가? 비만인 아이는 종종 신경질적이거나 때로 폭력적인 성향을 나타내곤 한다. 이는 과도하게 축적된 에너지를 아이 자신 나름의 방식(소리를 지르거나, 친구와 싸우거나, 물건을 부수거나)으로 소모시키고 행위다.
두 가지 문제 모두 치명적인 문제다. 육체적 문제는 아이의 존재 자체의 파멸을 의미한다. 또 정서적 문제는 아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파멸을 의미한다. 이처럼, 성장으로 흡수될 수 없는 과도한 에너지를 적절하게 소모하지 못했을 때 그 결과는 분명하다. 개인도, 사회도 광기와 폭력의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하나의 질문만 남는다. 어떻게 다이어트를 할 것인가?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놀랍게도, 바타유라면 ‘파멸’해야 한다고 말할 테다. 바타유는 성장에 사용되지 못하는 과잉에너지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식물에게 넘쳐나는 태양에너지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음식이 넘쳐나는 냉장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타유는 그 과잉에너지로 인해 결국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바타유의 이 파멸이, 뼈를 지탱하지 못하는 체중으로 인한 파멸도, 신경질과 폭력적인 행동으로 인한 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바타유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과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완벽하고 순수한 상실, 사혈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애초부터 성장에 사용될 수 없는 초과에너지는 파멸될 수밖에 없다. 이 피할 수 없는 파멸은 어떤 명목이로든 유용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제 불유쾌한 파멸보다는 바람직한 파멸, 유쾌한 파멸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하게 다를 것이다.”
바타유는 파멸을 두 종류로 구별하고 있다. 불유쾌한 파멸과 유쾌한 파멸. 불유쾌한 파멸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이는 음식을 과도하게 먹어서 비만인 아이가 신경질과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극심한 비만이 심화되어 정말 파멸해버릴지도 모른다. 이것은 정말 불유쾌하지 않은가. 하지만 바타유는 절망적인 전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유쾌한 파멸은 선물이다.
유쾌한 파멸이 있다. 유쾌한 파멸이 무엇일까? 넘치는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쾌한 파멸이 바로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답해준다. 나는 한때 극심한 비만이었다. 당연히 시도 때도 없이 짜증과 폭력적인 행동을 했다. 어느 날 알게 되었다. 이렇게 살다간 내 인생이 파멸로 치달을 것이란 사실을. 불유쾌한 파멸 말이다.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그렇게 20kg을 감량했다.
어떻게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유쾌한 파멸로 스스로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100kg 나갔던 시절, 시도 때도 없이 먹었다. 호주머니에는 늘 초코바와 사탕이 가득 있었다. 그것들이 내 호주머니에 있는 한 그것들을 곧 먹게 될 것이란 사실은 너무 당연했다. 친한 친구들에게 초코바와 사탕을 줘버렸다. 내게 먹을 것이 생기면 일단 친구들에게 줘버렸다. 그 친구를 위해서 아니라 나를 위해서 그랬다. 나의 다이어트를 위해서. 그렇게 나는 20kg을 감량했다.
이것이 바로 바타유가 말한 ‘유쾌한 파멸’이다. 파멸이 무엇인가? 자신이 가진 것을 잃게 되는 것 아닌가? 과잉된 에너지를 해소하느라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면 결국 무엇인가를 잃게 된다. 파멸이다. 불유쾌한 파멸. 하지만 내 손에 있던 초코바와 사탕을 친구에게 그냥 줘 버리는 것도 일종의 파멸이다. 가진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은 유쾌한 파멸이다. 유쾌한 파멸은 선물이다. 선물이 무엇인가? 선물을 주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를 위한 것이니 상대에게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게 되는 것 아닌가.
유쾌한 파멸, 즉 선물이 그렇지 않은가. 내가 초코바와 사탕을 친구에게 준 것은 나를 위해서지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 대가 역시 바라지 않는다. “이제 불유쾌한 파멸보다는 바람직한 파멸, 유쾌한 파멸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하게 다를 것이다.” 바타유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다. 불유쾌한 파멸은 내게 각가지 슬픔만을 주었다. 하지만 유쾌한 파멸은 건강한 몸뿐만 아니라 친구의 환한 미소까지 주었다. 불유쾌한 파멸과 유쾌한 파멸의 그 결과는 분명하게 다르지 않은가. 다이어트를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유쾌한 파멸을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