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잡는 법

발터 벤야민 ‘복제’와 ‘아우라’

아우라의 본질은 ‘지금-여기에’


아우라는 우리를 매혹시켜 빠져들게 만드는 독특한 분위기다. 이 아우라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긴 시간 좋아했던 연예인을 만났다고 해보자. 넋을 놓고 그 사람을 바라 볼 것이다. 그 연예인에게서 아우라를 느낀 까닭이다. 그 아우라는 어디서 왔을까? 당연히 그 연예인에게서 왔다. 그렇다면 그의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옷차림에서 아우라를 느낀 것일까?


아니다. 만약 그 연예인의 외모와 옷차림에서 아우라를 느낀 것이라면, 화면 속의 연예인에게서도 아우라를 느껴야 한다. 화면 속에서도 그의 수려한 외모와 화려한 옷차림을 그대로 일테니까. 하지만 우리는 실제로 그 연예인을 보았을 때만 아우라를 느끼게 된다. 그 연예인의 아우라는 그 자신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그의 외모나 옷차림에서 온 것은 아니다. 그럼 그 연예인의 아우라는 어디서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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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한 가지만은 빠져 있다. 그것은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은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이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아우라의 본질은 ‘지금-여기’에 있다. 그 연예인의 아우라는 그의 외모나 옷차림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 연예인이 ‘지금-여기’ 내 눈앞에 “일회적 현존재”로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에, 바로 여기서만 일회적으로 그 연예인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예인은 ‘원본’이고, 화면 속 연예인은 ‘복제품’이다. “가장 완벽한 복제에서도 한 가지만은 빠져 있다.” 그것은 원본이 갖고 있는 ‘지금-여기’에 있는 일회적 현존재다. ‘아우라’는 ‘지금-여기’에 있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장대한 폭포와 그것을 카메라로 똑같이 복제해도 무엇인가 다르다. 이제 다른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겠다. 아우라다. 사진 속 폭포에 아우라가 빠져 있다. 폭포의 경이로움은 아우라다. 그 아우라는 폭포의 그 장대함을 ‘지금-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일회적 현존재에서 온다. 사진으로 그것을 찍는 순간 아우라가 사라져 버리는 이유 역시 알 수 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 ‘지금-여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폭포는 ‘영원-거기’에서 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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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가 있는 ‘지금-여기’에 머물기


아우라는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그리고 그 행복을 남겨 두고 싶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카메라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는 더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을까? 내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순간을 음미하기보다 황급히 스마트폰을 찾는다. 그렇게 행복을 줄 아우라의 순간은 지나가버린다. 벤야민은 기술복제의 시대에서 아우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발터 벤야민


벤야민은 예술작품(원본)이 복제 가능해질수록 아우라는 위축된다고 말한다.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카메라를 생각해보라. 아우라는 ‘지금-여기’에 있다. 그 ‘지금-여기’를 훼손하고 위축시키는 것이 바로 카메라다. 카메라는 ‘지금’을 ‘영원’으로, ‘여기’를 ‘거기’로 바꿔놓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오월에 핀 예쁜 꽃에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그것에서 아우라를 느끼는 이유는 ‘지금-여기’에 그 꽃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을 꺼내려는 순간, 몰입되어 있는 ‘지금-여기’가 깨지고 만다. 그렇게 우리의 행복도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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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가 우리를 찾아올 때 해야 할 일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일이 아니다. 그 아우라를 그저 음미하면 된다. 장대한 폭포든, 오월에 핀 꽃이든, 우연히 만난 연예인이든, 우리를 매혹시킬 대상이 찾아오면 하던 것을 멈추고 ‘지금-여기’에서 잠시 머물면 된다. 그렇게 그 순간의 행복을 충분히 음미하면 된다. 행복이 행복한 이유는, 그 행복이 ‘지금-여기’에 잠시 머물기 때문이다.


행복은 일회적이어서 희소하기에 행복한 것이다. 그것이 행복의 본질이다. 우리는 그 행복의 본질을 알지 못하기에 셔터를 누르면서 행복을 훼손하는 것일 테다. 사진으로 행복을 박제해 두고 싶은 어리석은 바람으로 우리는 행복에서 멀어져 간다. 행복한 장면이 찾아왔을 때, 그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방법은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멈추고 그 행복의 순간에 머무는 일이다. 행복은 ‘지금-여기’에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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