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바타유 '파멸'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
많은 이들이 다이어트를 한다. 왜 안 그럴까? 요즘은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다. 달고 짜고 기름진 음식이 주위에 널려 있다. 집이든 밖이든 손만 닿으면 그런 음식들이 널려 있는 시대다. 과도하게 살 찐 사람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이어트가 우리 시대의 과제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하지만 다이어트라고 다 같은 다이어트는 아니다.
다이어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타인을 위한 다이어트와 나를 위한 다이어트. 전자는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 하는 다이어트다. 이 다이어트의 목표는 날씬한 혹은 마른 몸매다. 이들은 건강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들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다이어트를 한다. 이 다이어트는 말 그대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타인을 위한 것이지.
진짜 다이어트는 '나'를 위한 다이어트다. 이 다이어트의 목표는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건강이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비만인 이들이 있다. 이들이 정말로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다이어트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요?” 그리고 “어떻게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생명체의 근원은 태양에너지다.
“왜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요?” 그 답을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에게 들어보자. 먼저 바타유가 바라보는 지구와 생명체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구와 지구에 사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있다. 그런데 지구에 사는 어떤 생명체도 온전히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놀랍게도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들의 죽음을 먹고 산다.
풀은 물(의 죽음을) 먹고, 소는 풀(의 죽음)을 먹고, 인간은 소(의 죽음)을 먹는다. 이렇게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다른 것들의 죽음을 먹고 산다. 지구에 존재하는 그 어느 생명체도 다른 생명체들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여기에 중요한 질문이 하나 숨어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의 근본적인 에너지는 무엇인가?’ 풀은 물의 에너지를, 소는 풀의 에너지를, 인간은 소의 에너지를 통해 생명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그 모든 에너지들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태양 에너지다.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 이 에너지는 모든 생명체들이 존재할 수 있는 근원적인 에너지다. 이로부터 지구의 다양한 생명체가 유지될 수 있다. 인간은 소를 먹고, 소는 풀을 먹는다. 그럼 풀은 무엇을 먹는가? 햇볕과 물이다. 이 둘은 모두 태양에너지와 관계 되어 있다. 햇볕은 그 자체로 이미 태양에너지다. 또 풀은 물을 어떻게 섭취할까? 태양 에너지로 인해 증발된 수분이 비로 내리기 때문이다.
태양은 꺼지지 않기에, 끊임없이 에너지를 공급한다.
이처럼 지구 생명체의 에너지가 어디서 왔는가를 따지고 들어가면 그 근본에는 태양 에너지가 있다. 바타유는 이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바타유는 논의를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태양은 꺼지지 않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의 양 이상의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하고 있다는 의미다. 바타유에 따르면,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가 항상 과잉되게 마련이다.
“개별적 개체가 항상 자원 고갈의 위험 그리고 소멸의 위험에 직면하는 반면, 일반적 실존 즉 지구 생명체 전체에게는 자원은 항상 넘쳐 난다. 개체의 관점에서 문제는 자원의 부족이겠지만, 전체의 관점에서 문제는 잉여이다.” 「저주의 몫」 조르주 바타유
그렇다면 그 과잉된 에너지는 어디에 쓰이는가? 바타유에 따르면, 과잉된 초과 에너지는 우선 체계의 성장에 사용된다. ‘풀-소-인간’으로 구성된 지구 체계의 성장에 사용된다. 이는 쉽게 말해, 지구가 풀이 모자라는 체계라면, 그 풀을 더 자라게 하는데 태양에너지가 사용된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바타유는 이렇게 말한다.
“지표면의 에너지 작용과 그것이 결정짓는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유기체들은 원칙적으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많은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그때 초과 에너지는 체계의 성장에 사용될 수 있다.” 「저주의 몫」 조르주 바타유
여기서 바타유는 하나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만약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면 혹은 그 초과분이 그 체계의 성장에 완전히 흡수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논의를 쉽게 하기 위해, 지구라는 체계에 ‘풀-소-인간’만 있다고 가정해보자. 태양 에너지가 끊임없이 공급되어 계속 풀이 계속 증가한다. 그 풀을 소가 끊임없이 먹어 소의 개체수가 계속 증가한다. 그 소를 인간이 끊임없이 먹어 인간의 개체수가 계속 증가한다.
그렇게 지구라는 체계 안의 각 개체수가 계속 증가함에도 태양 에너지는 끊임없이 유입된다. 그렇게 생명체들의 계속 증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달리 말해, 생명체들이 계속 증가해 어느 순간 지구라는 체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을 때 어떤 일 벌어지게 될까?
일반경제와 제한경제
여기서 바타유는 ‘일반경제’general economy와 ‘제한경제’restricted economy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반경제는 과잉된 에너지를 적절하게 소모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제한경제는 과잉된 에너지를 축적만할 뿐 적절하게 소모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타유에 따르면, 한 개인이든, 혹은 사회든 그 체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과잉된 에너지를 적절하게 소모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일반경제를 통해서만 개인이나 사회라는 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바타유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그 체계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된다면, 또한 그 초과분이 그 체계의 성장에 완전히 흡수될 수 없다면, 초과 에너지는 기꺼이든 마지못해서든 또는 영광스럽게 재앙을 부르면서든 간에, 반드시 대가 없이 상실되고 소모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제한경제를 계속 유지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광기와 폭력의 폭발이 일어난다. 바타유는, 1800년대부터 인류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도의 생산력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과잉된 에너지를 축적하려고만 했을 뿐 적절하게 소비하지 못했다. 바타유는 1차(1914~1918), 2차(1939~1945) 세계대전이라는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진 인류사적 비극이 바로 탐욕스런 제한경제의 결과라고 보았다. 즉, 1, 2차 세계대전은 과잉된 에너지를 축적할 뿐 적절하게 소모하지 못했기에 발생한 에너지 과잉에 의한 폭발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