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월급을 주는 건 회사지만,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니까
사랑엔 기대가 따라오고, 기대는 언젠가 실망으로 바뀐다.
그래서 나는 회사를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그 다짐은 입사 첫날, 아주 빠르게 결정되었다.
그때 내 나이, 스물여덟.
석사를 막 끝낸 늦깎이 신입이었다.
국내 기업 면접에선 빠짐없이 이런 질문이 따라붙었다.
“신입사원이 과장이랑 나이가 비슷한데…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겠어요?”
그건 결국,
"우리는 나이 많은 신입이 불편합니다"
의 완곡한 표현이었다.
나는 겸손하게 말했다.
“잘 배울 자세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속으론 생각했다. 적응이 아니라 참는 거라고.
면접에선 나이를 묻지 않았다.
결혼 여부도 캐묻지 않았다.
이력서를 제출했고, 질문은 오로지 이력서 바탕으로 업무 역량에 집중되어 있었다.
‘아, 이건 좀 다르구나’
라는 기대감과 함께,
시험, 그룹 토의, 인터뷰까지 거친 끝에 나는 입사에 성공했다.
사장님이 문을 열며 환하게 맞이해줬다.
“어서 오세요. 첫 출근이시죠?”
그 한마디가 무척 인상 깊었다.
나를 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 같아서.
비록 전공도 다르고 생소한 업무지만,
잘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입사한 첫날, 나는 회의실에서 울었다.
면접에서 그렇게 다정하던 부장은
실상은 회의 내내 말을 끊는 사람이었다.
회의록을 쓰라고 지시하더니
“왜 네가 정리했느냐”며 나무랐다.
소개도 끝나지 않았고, 명함도 나오기 전이었다.
“거기 신입, 복사 좀.”
그게 내 첫 업무였다.
내 웰컴 키트였다.
점심시간엔 다 같이 외출했지만
대화는 줄임말과 업계 영어로 범벅이었다.
나는 맞장구만 치다 국을 다 식혀버렸다.
밥보다 눈치가 더 내려갔다.
퇴근 후 회식은 있었지만, 강요는 아니었다. 그리고 12시면 집에 갈 수 있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나에게 그것만으로도 큰 해방이었다.
대학원 시절, 새벽 5시에 귀가하고
9시에 다시 출근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밤을 새워 연구해도 돌아오는 말은
“이게 뭐야, 너한테 나가는 연구비가 아깝다.”
한 달에 50만 원 받던 그 시절보단,
지금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 월급이라도 나오니까.
나는 이 회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기대를 만들고
기대는 실망을 부른다.
나는 이곳에서
사랑받을 준비가 아니라,
살아남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2. 외국계 회사의 민낯 — 자유롭되 자유롭지 않다
–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회사’
회사를 바꾸지 않아도, 회사는 변한다. 내가 남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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