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았다는 말은, 적응했다는 뜻이 아니다
3화. 신입사원이 조직을 안다는 건
— 살아남았다는 말은, 적응했다는 뜻이 아니다
입사하고 처음 마주한 건, 사람들의 나이었다.
“몇 살이세요?”
“석사하셨다구요? 우와, 대단하세요.”
말끝에 ‘그래서 우리보다 늦었구나’가 숨어 있었다.
그중에는 나보다 세 달 먼저 입사한 신입도 있었다.
그들은 나보다 어렸고, 입사 날짜 기준으로 나보다 ‘선배’였다.
나는 그들을 동기이자 직장동료로 생각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선배임을 놓치지 않았다.
“누구 씨라고 부르면 기분 나쁘네요.”
그 말에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맞서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나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호칭을 생략했고, 대화는 자연스레 줄었다.
‘이게 맞나?’
‘내가 뭘 잘못했나?’
매일 반성하고, 다시 말조심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회사에서는 늘 내가 부족한 사람으로 남았다.
인사도 분명 열심히 했는데
어느 날 들려온 피드백은
“인사를 안 해요.”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억울했지만 해명도, 항변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더 조심해야지’ 하며 더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런데도 바뀌는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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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 회사엔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신입은 여자 화장실로 불려간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는 1주일 만에 불려갔다더라.”
“서열 교육 받았대.”
“울었다는 사람도 있던데?”
다들 조심하라는 듯 이야기했지만
정작 나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엔 그냥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나중에 누군가 말했다.
“넌 좀 달라. 눈빛이 좀, 딱딱해.”
“쟤는 그냥 냅둬. 선 넘으면 물어.”
내가 몰랐던 나의 인상, 나의 분위기.
그건 대학원에서의 시간들이 만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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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는 연구실 노예였다.
교수님의 호출은 새벽에도 예외 없었고
밤샘은 일상이었고
“이게 뭐야, 연구비가 아깝다”는 말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한 번은, 받은 연구비를 다시 돌려달라는 말도 들었다.
“그 돈 아직 안 썼지? 내가 좀 급해서 그런데 다시 줄 수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흰 봉투를 다시 건넸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밤새 실험하고도, 과외 하나 더 해야
다음 달 월세를 맞출 수 있었던 날들.
그래서 조조할인 영화가 유일한 사치였고,
지하철 첫차 안에서 졸다 종점까지 갔던 날도 있었다.
그렇게 굳어진 표정.
그렇게 배운 생존.
그러니, 화장실로 불려가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나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길들여진 사람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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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나를 ‘조용한 신입’이라 불렀다.
실은 나는 조용한 게 아니라
그저 침묵이 안전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열정보다
나를 지키는 게 더 중요했던 시기.
그 시기를 지나
지금도 나는 회사에서 적응하지 않았다.
그냥 살아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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