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되 자유롭지 않다
2화
외국계 회사의 민낯 — 자유롭되 자유롭지 않다
그날, 내가 처음으로 복사기를 미워하게 된 날이었다.
입사 첫날 아침. 기대했던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환영하지 않았고, 안내도 없었다.
오리엔테이션도, 소개도 없이 그냥 책상이 하나 배정됐다.
하얀 봉투 안엔 명함 한 박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들 바쁘게 움직였고, 나는 그 바쁨 속에서 혼자였다.
누가 데려가주지도, 같이 먹자 하지도 않았다.
식권은 어디서 받는지, 구내식당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그렇게 혼자 엘리베이터에 탔고, 혼자 내려가 아무 식당이나 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외국계 회사에서 처음 먹은 점심이었다.
자유롭다던 회사는, 그 자유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눈치였다.
선배들의 줄임말, 영어이름, 그들만 아는 일정.
모든 게 ‘알아서’였고,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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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기는 항상 고장 나 있어. 네가 알아서 해봐.”
대리는 무심하게 말했고, 나는 복사기 앞에서 꼼짝없이 서 있었다.
모르는 기계 앞에서 나는 점점 작아졌다.
처음엔 용지를 바꿔 끼웠고, 다음은 전원을 껐다 켰다.
마침내 출력이 되자 한 장이 잉크에 번져 있었다.
그걸 들고 가 대리에게 내밀자, 그는 한 마디 했다.
“이걸 이따 회의에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말문이 막히는 건 당황해서가 아니라, 그가 내게 인간적인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신입은 실수해도 된다고들 했다.
하지만 외국계 회사의 신입은, 실수할 새도 없이 ‘전문가’처럼 보여야 했다.
처음이라서요, 라는 말은 변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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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엔 회식이 있었다.
자율 참석이라 들었지만, 말 그대로 ‘자율적 의무’였다.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자, 나는 조용히 맥주잔만 만졌다.
누군가는 “신입은 뭐라도 불러야지”라며 마이크를 넘겼고,
나는 내키지 않게 마이크를 들었다.
‘자유’는 이토록 구속적이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입사 전 내가 상상하던 외국계는, 퇴근하면 자유를 누리는 삶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이름만 자유였다.
돌아오는 지하철 안,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회사를, 사람들을, 문화마저도.
사랑이라는 말은, 어쩌면 지나치게 낭만적이었다.
지금은 적응했지만, 그날의 감정은 오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왜냐하면 처음이라는 건, 가장 순수한 기대가 깨어지는 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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