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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Nov 07. 2024

아무튼, 도라지 (完)

episode. 完

7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손등을 확인했다. 손등은 어제보다 더 거칠어져 있었고, 조그마했던 새싹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것처럼 크게 돋아나 있었다. 가방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 7건, 문자메시지 5개라고 적혀있었다. 내용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젯밤 토했던 자국이 남아 있는 옷들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 목욕을 했다. 따뜻한 물이 전신을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손으로 몸을 만질 때마다 거친 감촉이 느껴졌다. 때수건을 손에 감싸고 있는 기분이었다. 목욕을 끝낸 후에 옷을 입고, 가방을 챙긴 후에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내가 향한 곳은 어젯밤 보았던 고려당이었다. 가게에는 오후 4시부터 영업한다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휴대전화의 진동은 아까부터 계속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손등의 새싹들은 반응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오십은 되어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었다. 저희 아직 영업 안 하는데요. 여자는 잠을 깨워서 짜증 난 것처럼 보였다. 죄송합니다. 하나 찾을 게 있어서요. 잊어버리고 간 게 있으신 거예요? 무슨 물건인데요? 주인이 말했다. 김대리님을 찾고 있거든요. 정확히는 여기서 나무로 변한 김대리님을 찾고 있습니다. 아. 여자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 그런 사람이 많더라고. 막 나무로 변하고 말이야. 우리도 그거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렇게 변해버리면 그 방은 쓰지도 못하니까. 아니, 누가 사람이 나무로 변한 방에서 밥을 먹고 싶겠어요. 당신이 생각해도 그렇지 않아? 여자는 들어오라는 말과 함께 제일 안쪽의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문을 열자 퀴퀴한 냄새와 함께 다 쓰러져 가는 나무가 보였다. 이게 그 나무인가요? 몇 주 전에 머리 휑하게 까지고 안경 낀 남자랑 왔던 사람 말하는 거죠? 주인은 이과장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나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표면은 까맣게 그을려 있는 것처럼 보였고, 바닥에는 말라붙은 낙엽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렇게 나무로 변하면 길게 있어봤자 한 달이야. 주인이 문에 기댄 채로 얘기했다. 햇빛도 못 받고 물도 못 먹으니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는 거지. 응? 내가 왜 이런 걸 돌봐주겠어. 이거 때문에 손님도 이방엔 받지도 못하는데. 그냥 이렇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야. 그래도 생명이니까. 내가 직접 베어버릴 수는 없지. 그럼. 그녀는 팔짱은 낀 채로 말했다. 다 보면 말해줘요. 나도 잠을 자야 장사를 하지. 그 말과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표면을 만지자 그의 껍질은 힘없이 떨어졌다. 내 손에는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손이 나무로 변한 탓일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 죽어가는 그를 쳐다보았다. 김대리님, 당신이 사라지고 제 생활은 많이 변했어요. 당신을 대신해서 대리직에 올랐고, 점심 메뉴를 골랐고, 이과장에게 맞장구도 쳐야 했으니 말이에요. 저는 회사가 무서웠습니다. 당신이라는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회사가 말이에요. 하지만 조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니까, 다행이라고 말이에요. 그의 가지에서 얼마 남지 않은 나뭇잎이 다리 위로 떨어졌다. 죄책감에 짓눌려 있었던 눈물이 그의 뿌리 사이로 떨어졌다. 주인에게 감사하는 말을 남긴 채, 가게를 빠져나왔다. 길가에는 목에 명찰을 건 직장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손에 커피를 쥐고 같은 방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내 손을 바라보았다. 손등까지 올라왔던 새싹들은 팔을 감아 올라가고 있었고, 피부들은 단단한 나무껍질로 변해가고 있었다.   

       

8     


 다음날 일어나 보니, 회사로부터 한 통의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해고통지의 문자였다. 사유 같은 것은 적혀있지 않았다. 그것은 일방적인 통보에 불과했다. 나는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채로 회사를 향해 뛰어갔다. 사무실의 직원들은 나를 힐끔 쳐다본 후에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이과장이 보였다. 자네 짐이라면 저기 있네. 그는 손가락으로 내 책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메일을 열어 이과장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해고라니요. 회사에 결정이었을 뿐이네. 그는 지겹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손등이 미칠 듯이 가려워졌다. 그리고 자네 손을 좀 보게. 타자도 칠 수 없는 손으로 무슨 일을 하겠다고.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이과장과 얘기하는 도중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하얀색 와이셔츠를 입은 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과장은 나를 밀어낸 후에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남자를 자신의 자리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소개했다.     

 

 오늘부터 같이 일을 하게 된 김성민 군이라고 하네. 김성민 군은 앞으로 김대리가 했던 일을 대신하게 될 거야. 아니, 그야 자네는 이제부터 김대리가 아닌가! 라고 말하며 이과장은 크게 웃었다. 사무실의 직원들도 김성민 군도 같이 웃어 보였다. 그들에게로 다가가려고 했지만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를 내보려고 했지만, 목이 잠긴 것처럼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속도가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손등으로부터 뻗어 나온 새싹들이 온몸을 감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는 이내 회사의 바닥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이과장과 직원들이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경멸과 공포가 서려져 있었다.     


 이과장의 욕설이 들려왔다. 이과장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고 나무를 잘라버리라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자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마스크를 쓴 남자들이 들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전기톱이 들려있었다. 이과장은 나를 가리키며 무엇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전기톱의 전선을 연결했다. 그리고 전기톱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내 허리였던 부분부터 너무 파편들이 사무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어폰을 꽂은 채로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오직 김대리만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초등학교 여름방학에 죽여버린 허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 있다.      


 ‘살인자’     


 나는 몇 번이나 그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쿵 - 더 이상 김대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회사의 바닥 모양이 계속해서 내 눈앞을 지나갔다. 그리고 마스크 쓴 사람들은 나를 회사 뒤편의 쓰레기장에 던져놓았다. 멀리서 이과장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마스크를 쓴 남자들에게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들에겐 단지 그뿐인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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