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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Nov 11. 2024

날숨 (1)

episode. 1

1


 그러니까,     


 이게 몇 번째인지 아십니까? 눈감아주는 것도 한두 번이지. 안경을 치켜세우며 A는 흙투성이가 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A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손가락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있었다. 탁 - 탁 - 소리를 내며 손을 털자 하얀 바닥에는 후추를 뿌리듯이 모래 알갱이들이 떨어졌다. 이봐요. 강준혁 씨 당신이 마을에 구덩이를 판 곳만 몇 곳인지 알고 있습니까? A는 한숨을 쉬며, 쓰고 있던 안경을 벗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렀다. 밭도 아니고 마을 한복판에 그런 큰 구멍을 파고 있으면 어떤 사람이 신고를 안 하겠습니까.


 이게 벌써 몇 번째냐고요. 지난번에도 아이들이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마을 한 번 뒤집힌 일 기억하죠? 강준혁은 고개를 들고 A를 노려보았다. 그게 내 잘못이라는 거야? 자기들이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게 왜 내 탓이라는 건데? 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A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런 삽질 좀 그만하라는 뜻이에요. 세상에 할 일이 땅 파는 것 말고도 얼마나 많습니까. 농사를 짓든지, TV를 보든지, 그런 것도 아니면 최소한 일은 만들지 마시라고요.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철창에 갇히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A는 비어 있는 철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강준혁은 철창을 힐끔 쳐다본 후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A는 내 손에 서류를 쥐어주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A가 나가자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왔다. 움직일 때마다 몸에 묻은 흙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내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자연스레 손을 옷에 몇 번 문지른 후에 그의 손을 잡았다. 투박하고 거친 손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발령받은 김범주라고 합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을 빼고는. 삽 달라고 삽. 그래야 땅을 메꾸든가, 말든가 할 거 아냐. 척하면 척 몰라? 그는 신경질적인 어투로 말했다. 그렇게 척하면 척 아는 사람이 마을 한복판에 왜 구멍을 팠는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나는 흙이 묻은 손을 어색하게 털어낸 후에 물품 보관실로 향했다. 삽은 구석에 세워져 있었다. 삽의 손잡이 부분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고, 군데군데 흙과 모래가 끼어있었다. 얼만큼 삽질을 했는지 조금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언제까지 보고만 있을 거야? 강준혁은 언제 들어왔는지 내 옆에 서 있었다. 내가 뒷걸음질을 치는 사이에 그는 삽을 낚아채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상습이야, 상습. A는 믹스커피를 휘휘 저으며 내게 말했다. 마을 땅이 다 자기 소유인 줄 안다니까? 허구한 날 땅 파고 다시 메꾸고. 관광객도 하나 안 오는 촌구석에 저놈 새끼 하나 때문에 무슨 난리냐고. 야, 범주야. 미지근한 물 좀 가져와 봐. 커피 물이 너무 적다. 나는 A에게 커피포트를 가져다주며 물었다. 근데 그 사람은 왜 땅을 파고 있는 겁니까? 뭐 보물이라도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 말이     


 그 말     


 이야. A는 맞장구를 치며 서랍에서 서류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그것을 넘겨주었다. 강준혁이라고 적힌 파일 안에는 그에 관한 정보들이 적혀 있었다. 이놈 때문에 내가 골머리 썩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이놈이 구덩이를 팔 때마다 이장이 찾아와서 매번 지랄을 떠는데, 넌 진짜 안 봐서 모를 거다. 나보고 일을 똑바로 안 하네, 한 번만 더 눈에 띄면 상부에 찌르겠다고 난리가 났었다니까. 나라고 어쩌겠어. 요즘 세상에 무턱대고 잡아 넣을 수도 없고. 강준혁도 문제야. 매년 농사나 지었던 땅에 있어 봐야 뭐가 있겠냐. 지하수가 터지겠냐, 공룡화석이 나오겠냐. 근데 허구한 날 땅을 파고 있으니, 내가 미치고 팔짝 뛰겠다니까. A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앞으로 강준혁을 감시하라고 속삭였다.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그는 잠복근무의 일종이라고 말했다. 이제 가 봐. 그는 내 품속에 서류를 넣어주며 말했다. 예? 강준혁 그 새끼 감시하러 가보라고. 얘기 끝난 지가 언젠데 멀뚱히 서 있어. 척하면 척 몰라? 이놈의 마을은 뭐가 그리 척하면 척 아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속에서 끓는 화를 짓누르며 겉옷을 챙겨입었다. 문을 열자마자 찬바람이 온몸을 헤집어 놓는 것 같았다. 야 빨리 닫아라. 찬바람 들어온다. A는 어느새 내 자리에 앉은 채로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나는 문을 닫고 강준혁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찬 바람이 불어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숨을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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