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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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혁이 구덩이를 파놓은 곳은 마을의 공터였다.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마을회관과 가까워서 작은 행사도 열리는 곳이었다. 경찰서에서 공터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나는 그의 서류를 꺼내 천천히 읽으며 걸어갔다. 서류는 꽤 분량이 많았는데 그것은 인적사항 뒷장부터 적혀 있는 A의 기록 때문이었다.
강준혁이 이곳에 온 건 이 년 전이었다. 그의 고향은 서울의 외곽에 붙어있는 작은 동네였다. 그리고 이 년 전부터 지금까지 크고 작은 구덩이들을 팠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붙여져 있는 사진들을 보니 처음에는 종아리까지 오던 구멍들이 점점 사람 한 명 거뜬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변하고 있었다. 점점 커다란 크기로 변해가는 구덩이에 아이들이 빠지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은 그를 신고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찰서에 붙잡혀 온 강준혁을 담당했던 사람은 A였다. 하지만 아무리 심문해봐도 구덩이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구덩이에 관한 얘기는 고사하고, 강준혁 본인에 관한 이야기도 전혀 하지 않았다. 강준혁은 매번 훈방 조치를 받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구덩이를 팠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서류는 끝이 났다.
공터에 도착했을 때, 강준혁은 구덩이를 메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인사를 할 새도 없이 그는 땅을 메우는 일에 집중했다. 구덩이는 적어도 삼 미터는 되어 보였다. 생매장을 시켜도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을 만큼 깊고 어두워보였다. 오늘부터 지켜보라고 해서요. 그는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돌아가.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강준혁은 얼굴에 맺힌 땀을 목에 걸려 있는 수건으로 닦았다.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거라서요. 나는 말끝을 조금 흐렸다. 그는 삽질을 멈추고 삽을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담배 좀 사 와. 그는 손에 쥐고 있던 담뱃갑을 구겨버리며 말했다. 더 원 블루로. 네? 라고 되물을 새도 없이 그는 다시 삽질을 시작했다. 내 발은 얼떨결에 구멍가게로 향하고 있었다. 가게에서 담배를 사고 나오는 길에 A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잘하고 있냐? 쩝쩝 – 거리는 소리가 그의 말 사이에서 들려왔다. 뭐? 담배? 야 이 새끼야, 내가 감시하랬지. 누가 담배심부름이나 하고 있으래. 너 사리 분간 안 되지? A는 입에 음식을 머금은 채로 계속해서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전화기를 타고 그가 씹고 있던 음식이 내 귓속에 박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길거리에 선 채로 그에게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A는 한참을 소리를 지르다 말을 말자며 전화를 끊었다.
사람 세 명도 거뜬히 들어갈 것 같던 구덩이는 세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메꿔졌다. 나는 A에게 구덩이가 메워졌다고 보고했다. 그는 지금부터가 제일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에도 이장한테 걸리면 끝이라는 말과 함께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범주야, 난 오래 일하고 싶다. 너도 오래 일해야지. 진급도 하고, 서울로 발령도 받고, 어깨에 무궁화도 좀 달고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나는 A의 말에 연신 <네>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강준혁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삽을 들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는 그를 조금 뒤에서 따라가기 시작했다. 강준혁은 나를 몇 번 힐끔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가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도착한 곳은 허름한 철문 앞이었다. 집까지 들어오게? 그는 열쇠로 문을 따며 말했다. 아, 아니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을 쳤다. 내일도 오는 건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철문이 닫히자 안에서는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굳게 닫힌 철문을 잠시 바라본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