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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Nov 18. 2024

날숨 (3)

episode. 3

3


 그날 이후로 매일 강준혁을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를 따라다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바퀴씩 마을을 도는 것은 기본이었고, 마을 근처의 강이나 산을 오르는 일도 허다했다. 강준혁은 이따금씩 땅에 귀를 갖다 대곤 했다. 심장이 뛰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조심히 땅에 귀를 대었고, 삽으로 땅을 조금씩 파내기도 했다. 그와 며칠을 함께 했을 뿐인데 몸에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온몸에는 근육통이 생겼고, 발에는 물집이 터져 있었다. 아예 노가다를 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 집에 돌아오기만 하면 기절하기 일쑤였다.     


 강준혁의 연락을 받은 것은 일요일 오전이었다.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기도 전에 그는 마을 근처의 개울로 오라는 말만 남긴 채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서둘러 옷을 입고 개울로 향했다. 개울에 가까워지자 강준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개울과 조금 떨어진 땅에 귀를 댄 채로 앉아 있었다.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땅에 귀를 댄 채로 검지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가까이 와보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 소리 좀 들어봐. 그는 귀를 대고 있던 곳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나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땅에 귀를 대었다. 하지만 땅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개울이 흐르는 소리뿐이었다. 아무소리도 안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그는 내 목덜미를 움켜잡았다. 그리고 내 귀를 땅에 바싹 붙였다. 힘을 빼지 않았다면 목이 꺾여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귀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개울이 흐르는 곳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들려왔다. 휴대전화의 진동이 울리는 것처럼 땅 깊숙한 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서 그 자리에서 몇 발자국 떨어졌다. 강준혁은 천천히 일어나서 나에게 삽을 건네주었다. 나는 삽을 받아든 채로 그를 쳐다보았다. 일해야지 일.     


 삽질은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강준혁은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질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그는 쉬지 않고 땅을 파냈다.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나 역시 덩달아 삽질을 시작했다. 삽질을 시작한지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서 팔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힘이 빠지고, 삽을 쥐고 있는 것조차 버거웠다. 나는 삽을 지팡이 삼아서 쭈그리고 앉아버렸다. 강준혁은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그런 그의 삽질을 보고 있자니, 문득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런 완벽한 삽질이 있을까. 나는 그의 삽질을 무심코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삽질을 잘하세요? 머릿속에서 맴돌던 말이 툭 - 하고 튀어나왔다. 강준혁은 삽질을 잠시 멈추더니 내 쪽을 바라보았다. 구덩이 속이 싸한 기운으로 채워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목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는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강준혁은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담배 하나를 꺼내물었다. 요령이지 요령. 평생을 삽질하고 살았는데. 그는 담배를 힘껏 빨아들이고는 후 - 하고 내쉬었다. 하얀 연기가 안개처럼 주위에 퍼지고 있었다. 나한테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연기가 사라지자 독한 담배 향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기침이 나올 것 같아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한 번 튀어나온 기침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배낭에서 물을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내일도 여기서 보자고. 그는 삽을 챙기며 말했다. 그가 말한 해야 할 일에 관해서는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그는 그 말을 한 뒤로 계속 땅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가 보고 있었던 것은 땅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깊은 컴컴한 어둠만이 있는 곳에서 그가 보려고 한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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