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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Nov 21. 2024

날숨 (4)

episode. 4

4


 며칠 동안 나는 그와 구덩이 속에서 만났다. 구덩이 안에는 살림이라도 차린 것처럼 라면 봉지와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구덩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었다. 사람 두 명이 겨우 들어가던 구덩이는 며칠 사이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을 만큼 넓어졌고, 머리까지 덮일 만큼 깊어졌다. 마치 만화영화에서 볼 법한 커다란 함정을 만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돌덩이와 나무뿌리들이 삽 끝에 걸리기 시작했다. 나무뿌리가 보이면 흙을 덮고 다른 곳을 파야 했기 때문에 구덩이는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만큼 깊게 들어왔는지도 모를 무렵에 삽 끝부분으로부터 묵직한 진동이 전해졌다. 바스락 - 거리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보인 것은 쓰레기봉투였다. 종량제봉투 사이로 하얀 페트병들이 눈에 보였다. 라벨지도 뜯지 않은 페트병에는 삼다수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거 좀 보라고. 강준혁이 가리키는 곳에는 다른 쓰레기봉투가 묻혀 있었다. 그는 봉투를 뜯고 안을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다 쓴 석탄들이 들어가 있었다. 강준혁과 나는 석탄이 담긴 봉투를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흙이 무너져 내리며 쓰레기봉투를 껴안은 채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강준혁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온몸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헛구역질부터 올라왔다. 그리고 강준혁은 다시 봉투가 묻혀 있던 곳을 가리켰다. 마을 사람들 전부가 버린 것보다 많은 쓰레기가 땅속에 묻혀 있었다. 아까 봤던 석탄은 물론이고, 플라스틱에, 음식물 쓰레기 등이 골고루 들어가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 사이에는 구더기들이 꿈틀거리고 있었고, 하수 처리장에서나 날법한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이게 도대체 뭡니까. 강준혁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쓰레기봉투의 매듭을 다시 묶었다. 그리고 쓰레기봉투를 든 채로 구덩이 밖으로 올라갔다. 이게 다 뭐냐고요. 일단 옮기자고. 강준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구덩이에서 발견된 쓰레기봉투는 총 스물여섯 개였다. 강준혁과 나는 근처의 나무 밑동에 걸터앉았다. 저 쓰레기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강준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놈들이 한 짓이지 뭐. 강준혁의 손가락은 마을 외곽의 화력 발전소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말을 한 뒤로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강준혁은 한참을 앉아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이만 돌아가야겠다는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경찰서로 돌아간 후에 조용히 A를 불러내었다. 나는 A에게 아까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넌 그걸 보고만 있었냐? A는 쏘아붙이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내가 이런 일 있으면 바로 보고 하랬잖아. 정신 안 차리지?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다. 야, 듣고 있냐? 듣고 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A는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 – 툭 –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는 목에 힘을 줬다. 하, 이 새끼 봐라? 탁 – 하는 소리와 함께 정강이가 욱신거렸다. 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정강이를 잡고 꿇어앉았다. 고개를 들자 A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피우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내뱉었다. 목젖까지 올라왔던 화는 쉽사리 누그러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숨을 들이쉬고 후 – 하고 내쉬었다. 뜨거운 입김이 바닥에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다. A가 버리고 간 담배꽁초에는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다. 나는 발로 남은 불씨를 꺼버렸다. 그리고 강준혁이 가리켰던 발전소를 쳐다보았다.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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