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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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이장에게 연락을 받은 것은 오전 아홉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보여줄 게 있으니 마을회관으로 오라는 연락이었다. 회관에는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중앙에는 이장이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로 앉아 있었다. 강준혁 그놈이 또 사고 쳤다메? 이번엔 발전소를 부수려고 했단다이가. 아니, 할 짓이 그래 없다나? 가만히 있는 발전소를 건들기는 왜 건드노. 경찰들은 저런 놈 안 잡아가고 뭐하는지 모르겠다. 어제 집으로 돌아간다던 그의 말이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이 열리고 강준혁은 A의 손에 이끌려서 들어왔다. A는 억지로 그를 이장 옆에 앉혔다. 이장은 강준혁을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 어제 발전소에는 왜 들어갔노? 이장이 물었다. 어제 개울 근처에서 쓰레기봉투들이 나왔다고. 자그마치 스물 여섯개가 말이야. 발전소 놈들이 묻은 게 분명하다니까. 그래서 말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 쓰레기가 발전소에서 묻었다는 증거는 있나? 이장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강준혁은 대답하지 못했다.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잡으면 쓰나. 이장의 말은 차갑게 바닥에 깔렸다. 준혁아, 세상에는 말이다. 분수라는 게 있다. 분수. 먹고 싶은 거 다 무면서도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런 사람들이 흘린 콩고물이라도 주서 먹어야 하는 사람이 있는 거다. 니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어떤 사람 같노? 우리는 말이다. 그런 콩고물이라도 좋다고 받아 쳐무야 하는 사람인거야. 바닥에 납작 엎드려가 숨소리도 내지 말고, 그분들이 떨구는 콩고물이라도 열심히 주서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꼬. 발전소가 지어지고, 마을이 알려지고, 보조금이라도 받아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지 않겠나? 근데 니가 이렇게 바득바득 개기고 있으면 우리 같이 납작 엎드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뭐가 되겠노. 이번에는 눈감아 줄 테니까, 발전소 사람들한테 가가 싹싹 빌고 온나. 무릎을 꿇으라면 꿇고, 개처럼 짖으라면 짖어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제. 회관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강준혁의 얼굴은 터져버릴 것 같이 붉어졌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강준혁은 이장의 손을 뿌리치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냅다 꽂아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회관 안에 울려 퍼졌다. A는 강준혁에게 달려가 손에 수갑을 채웠다. 수갑을 채웠음에도 그는 이장을 보며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장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휴지로 그의 상처를 눌렀다. A는 강준혁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쓰러져 있는 이장을 일으켜 세웠다. 이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형사 양반 방금 봤제? 지가 무슨 영웅인 줄 안다 카이. 이장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지가 지구를 구하긴 뭘 구한다고 저래 난리고.
지구를
구한다고요?
이장은 얼굴을 붉힌 채로 말을 이었다. 내가 진짜 이런 이야기까진 안 할랬는데. 강준혁 저놈 서울에서 무슨 일 했는지 알고 있나? 노가다다 노가다.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나와 가, 돌덩이나 운반하면서 살았다이가. 근데 이 년 전인가 페르지오 아파트 알제? 그 왜 TV에서 광고하던 거. 근데 공사중에 환경단체랑 실랑이가 붙었다이가. 산을 깎네 마네 했던 거 기억하제. 그래서 일이 커져가 법정까지 넘어가고. 그 후에 환경단체가 이겨버려서 공사가 중단 됐었다이가. 근데 저놈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었던 거라. 그 일 터지고 밀린 돈을 받으러 갈 때마다 돈 주는 걸 미뤘다고 하데. 하루 이틀 미뤄진 게 그새 한 달이 되어버린 거라. 그때부턴 자기를 만나주지도 않았다더라고. 당장에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똥줄이 탔겠지.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회사로 찾아갔을 땐 이미 사장이고 직원이고 다 사라지고 난 뒤였던 거라. 그래서,
그래서?
자살하려고 했다더라고. 그 페르지오 아파트 옥상에서. 가족들은 무슨 죄고. 안 그렇나? 근데 옥상에 올라가서 땅을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숨을 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는 거라.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자세히 들어보니까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였던거라. 그래서 강준혁이가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아래층에서 소리가 들려오더래. 그렇게 한 층씩 내려갈수록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고 말하데. 무엇인가 숨을 참고 있는 소리 같았다더라고. 그래서 결국에는 일 층까지 내려오게 된 거야. 그렇게 아파트를 빠져나와서 땅을 살펴보니까, 이번에는 그 소리가 땅 밑에서 들려오고 있었던 거라. 그래서 강준혁 이놈이 뭘 했는지 아나? 삽질을 하기 시작한거야. 누군가 생매장이라도 당했다고 생각한거지. 하여간에 TV가 사람을 망친다니까. 안 그렇나? 그렇게 밤새도록 삽질을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에 삽 끝에 뭔가 탁 - 걸린 느낌이 들었다카데. 그 틈 사이로 뭔가가 막 새어 나오고 있었다더라고.
지하수라도 터진 겁니까? 아니, 지하수였으면 말도 안 했다. 그런 게 아니라, 강준혁 말로는 뭔가 숨을 내쉬고 있었다는 거야. 숨을요? 그래, 숨. 그래서 이게 뭔가 하고 다시 한번 삽을 푹 - 하고 집어넣었더니. 땅 밑에서 뜨거운 바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카데. 바람이 너무 강해서 지 몸이 붕 - 하고 떠올랐다카데. 사람 키 세 배 정도 되는 구덩이었는데 어느 순간 구멍 밖으로 나와 버린 거지. 근데 그 숨인지 뭔지를 맞고 있으니 그런 기분이 들더래.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던가? 그래서 내가 <도대체 그 구멍은 뭐였는데!> 하고 물어보니까, 강준혁 이놈이 글쎄, <숨구멍>이라고 말하는 거라. 아니 웃기지 않나? 가스가 터진 것도 아니고, 지하수가 터진것도 아니라, 숨구멍이라니. 내가 <그래서 그게 도대체 누구의 숨구멍인데!> 하고 물었더니. 아니 글쎄,
지구
라고 하는 거라. 그 녀석 말로는 지구가 숨을 내뿜고 있었대. 형사 양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 지구의 숨인지 뭔지를 맞은 후로는 일도 안 하고 온종일 돌아다니면서 그놈의 숨구멍을 찾고 다녔던 거라. 뭐? 가족? 가족은 일찌감치 떠난 후였다. 누가 허구한 날 땅만 파는 남자랑 같이 살고 싶겠노.
근데 이 년 전에 우연히 이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소리가 들린 거라. 그 숨구멍인가 뭔가를 봤을 때랑 똑같은 소리가 들렸다더라고. 그 순간부터 이 마을에 내려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거다. 그놈이 술에 취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데 내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노. 그냥 술주정이겠거니 했는데 정말 온종일 땅만 파고 다니니까 내가 열불이 안 나겠나?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지구의 숨구멍이 있을 수가 있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딱 강준혁이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니까. 이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붉게 물들었던 그의 얼굴이 조금씩 원래의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내 물음에 이장은 실소를 터트렸다.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