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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Nov 28. 2024

날숨 (6)

episode. 6

6


 강준혁을 다시 만난 건 경찰서의 철창 안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TV는 어두운 경찰서를 홀로 밝히고 있었다. 경관은 손에 리모컨을 쥔 채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었다. 나는 그를 숙직실로 옮겨 준 후에 철창 앞을 지켰다. 숨구멍을 찾고 계신다면서요. 그는 내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아무 말도 못 하게 입을 뭉개놨어야 했는데. 강준혁은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리며 말했다.     


 형사 양반도 내가 미친놈이라고 생각하지? 가족도 버리고 땅만 파는 미친놈이라고. 근데 말이야. 오십 년을 넘게 살면서 세상이 부조리하단 것쯤은 알고 있었다고. 가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참으면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것도. 그냥, 나는 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근데 그것마저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잖아.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근데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가장 후회가 됐던 게 뭔지 알아? 가족들에게 못 해 준거? 좀 더 좋은 직장을 가지지 못한 거? 그런 게 아니라, 나를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한 거였다고. 너흰 정말 씨발놈들이다.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한 게 그렇게 분하더란 말이야. 그런데 옥상에서 그 소리를 들은 거야. 숨을 참고 있는 듯한 소리를. 그래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고. 미친 듯이 말이야. 그리고 지구가 내뿜는 숨을 맞게 된 거야. 그 따뜻하고 후련한 느낌은 아마 평생이 지나도 다시 느낄 수 없겠지. 깊고 어두운 구멍 속에서 나를 올려준 것은 가족도 친구도 돈도 아니라, 지구가 내뿜는 숨이었다고. 그리고 그 숨을 맞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아, 지구도 참고 있었구나.   

  

 지구도 참고 있었던 거라고. 형사 양반. 지구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걸 알면서도 꾹 참고 있었던 거야. 얼마나 긴 시간을 참고 있었는지 가늠 할 수 있겠어? 어떻게 지구가 참고 있었던 일을 우리 같은 게 이해할 수 있겠냐고. 형사 양반,     


 지구도 말이야.     


 지구도…….     


 참고 있는 걸 내뿜을 권리가 있다고.    

 

 지구가 내 숨통을 트이게 해준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지구의 숨을 트이게 해줄 차례야. 그 후로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숨구멍에 대해서만 생각했어. 가족도 친구도 모두 떠나버렸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건 지구가 나한테 부탁한 일이니까.     


 그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전부 내뿜는 것처럼 바닥에는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그는 한 명의 어린아이, 혹은 나약한 어른, 그리고 강준혁으로서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나는 철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힘껏 껴안았다. 그의 울음소리는 조용한 경찰서 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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