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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02. 2024

날숨 (7)

episode. 7

7


 어릴 적, 내가 다니던 병원에는 헬륨 풍선을 파는 기계가 있었다. 매번 나는 기계 앞에서 엄마에게 풍선을 사달라고 조르곤 했다. 그럼 엄마는 <주사 맞을 때 울지 않으면 사줄게> 라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주사를 맞을 때, 입술을 꽉 깨물고 울음을 참았다. 주삿바늘이 내 팔을 찌르고 피부 속으로 하얀 액체들이 흘러 들어와도 나는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았다. 그렇게 있는 힘껏 울음을 참고 나면 엄마는 장하다는 말과 함께 내 손에 헬륨 풍선을 쥐여주었다.     


 사실,     


 난 울고 싶었다. 그냥 목청이 터져라 울면서 엄마에게 안기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놈의 헬륨 풍선이 뭐길래 울음을 참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울음을 참고 받았던 헬륨 풍선은 병원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놓쳐버리고 말았다. 몇 초 사이에 풍선은 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올라가 버렸다.     


 강준혁과 철창에서 잠들었던 날,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하얀 손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엄마의 손 뒤에는 커다란 풍선 기계가 놓여 있었다. 엄마, 나 저거. 나는 손가락으로 기계를 가리켰다. <오늘 주사 맞을 때, 안 울면 사줄게>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범주 - 얼굴이 신기할 정도로 하얀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엄마는 내 손을 이끌고 주사실로 향했다.   

  

 간호사는 나를 침대에 앉히고 주사기를 꺼내 들었다. 주사기 끝부분을 툭툭 건드리자 하얀 물방울들이 침대 주위로 튀었다. 엄마는 내 웃옷을 벗겨서 간호사에게 팔을 내주었다. 간호사는 솜으로 내 팔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내 팔을 두들기자, 푸르스름한 혈관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간호사는 주삿바늘을 들이밀며 말했다. 나는 주삿바늘을 보자마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쇠의 싸한 느낌이 피부를 뚫고 들어오는 기분을 받았다. 주삿바늘 속에서 하얀 액체들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고, 그 순간 나는 몸에 피가 돌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헬륨 풍선을 생각했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잘 참았어요. 라는 말과 함께 간호사는 하얀 솜을 팔에 덧대어주었다.     


 간호사는 엄마에게 내가 울지도 않고 잘 참았다고 칭찬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원래 이런 걸 잘 참는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어느샌가 잘 참는 어린이가 되어 있었다. 나는 무서웠다. 언젠가 내가 이런 것들을 참지 못했을 때, 엄마가 어떤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공포가 가득 담긴 주사기가 나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으앙 - 하고 울어버렸다. 주사실이 떠나가랴 우는 바람에 간호사와 엄마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내 등을 두드리며 내 귀에 속삭여주었다. 잠깐이었지만 엄마의 말에서는 따뜻한 향기가 느껴졌다. 뾰족한 주삿바늘이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울고 나니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아직 엄마의 품속에 안겨 있었다. 고개를 들자 웃고 있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엄마는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손가락을 따라가 보니 손목에는 하얀 실이 묶여 있었다. 실을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빨간 풍선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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