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完
8
잠에서 깼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것은 손이었다. 지금 자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강준혁은 내 머리채를 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땅이 크게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경찰서 안의 책들과 물건들이 떨어졌고, 선반 위에 놓여 있던 화분과 액자들이 떨어지면서 경찰서 안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숙직실에서 자고 있던 경관이 튀어나왔고, 밖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런 소리보다 중요한 것은 땅 밑에서 나고 있는 소리였다. 커다란 진동 소리가 땅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강준혁을 철창에서 풀어주고 우리는 경찰서 밖으로 튀어나왔다. 땅은 조금 전보다 더 흔들리고 있었다. 크게 흔들리던 땅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왔고, 가축들은 울타리를 뛰어넘거나 부수면서 마을 밖으로 사라졌다. 빨리 마을 밖으로 대피하세요! 강준혁은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경찰서에 있던 확성기를 들고나온 모양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땅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똑똑히 마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을 밖은커녕 집 근처에서 주저앉아 있거나 논밭을 뛰어다닐 뿐이었다. 에이 씨. 강준혁은 확성기를 쥔 채로 회관이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이장이었다. 속옷만 입은 채로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뭐 하시는 겁니까? 빨리 대피해야죠. 내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그는 계속해서 서랍을 뒤지고 있었다.
이런
씨발놈이. 강준혁은 이장을 향해서 소리쳤다. 이장은 그제야 우리를 쳐다보았다. 마을이 박살 나게 생겼는데 뭐 하고 있는 거야! 강준혁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소리쳤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죽어도 이건 다 가지고 죽을 거다. 이장의 품에는 통장과 도장들이 안겨 있었다. 강준혁은 이장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주먹을 냅다 꽂아버렸다. 이장은 입을 부여잡은 채로 맥없이 쓰러졌다. 통장과 도장들이 그의 주변에 흩뿌려지듯이 떨어졌다.
강준혁은 방송 장비의 전원을 올렸다. 그리고 마이크를 붙잡은 채로 입을 열었다. 지금 마을에 커다란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허둥대지 말고 경찰의 지시하에 빨리 마을 밖으로 대피하세요. 다시 한번 말하겠습니다…… 강준혁이 방송을 하는 사이 빨리 마을을 빠져나가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땅을 더욱 크게 흔들렸고 더는 서 있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쩌적 -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금이 가는 것이 보였다. 강준혁은 마이크를 던져버리고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가는 길에 쓰러져 있는 이장이 눈에 보였다. 저놈은 그냥 내버려 둬! 강준혁이 내 팔목을 잡은 채 말했다. 우리가 빠져나오자마자 회관은 힘없이 무너졌다.
점점 땅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젖 먹던 힘을 다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커다란 소리가 들리고 땅은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마을은 커다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집들은 떨어지며 점점 작은 형태로 바스러지기 시작했고, 자동차나 냉장고들은 빠른속도로 땅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발전소의 굴뚝이 보였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구덩이로 떨어지고 있는 모습은 마치 담배꽁초 같았다. 그리고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옆을 쳐다보니 강준혁이 확성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며 떨어지고 있었다. 살고 싶다. 끝없이 펼쳐지는 어둠 속에서 나는 중얼거렸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주문을 외우듯이 나는 몇 번이고 살고 싶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때, 등 뒤에서 따스한 바람이 느껴졌다.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괜찮다는 말처럼 바람은 내 등을 살포시 쓰다듬었다. 그리고
두둥실 -
내 몸은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강준혁도 마찬가지였다. 헬륨 풍선이 날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천천히 지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구멍을 빠져나오고도 우리는 계속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나는 고개를 틀어 강준혁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확성기를 손에 든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나는 그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확성기를 입에 갖다 대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