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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12. 2024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2)

episode. 2

2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는 거 알고 있냐? 채수는 가끔 나를 때리다 말고 이런 엉뚱한 소리를 하곤 했다. 평범한 녀석이 말했더라면 소위 말하는 ‘낭만 있다’라는 말로 포장이 가능하겠지만, 채수가 말하면 다르다. 으응. 하고 대답을 하면서도 나를 진짜 죽여버리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채수는 죽기 직전까지만 나를 때렸고, 숨통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후에 거리로 사라졌다.      


 자살을 시도할 용기는 없다. 손목을 긋거나, 목을 매거나 옥상에서 떨어지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다. 매번 채수에게 맞을 때마다 나는 기도한다. 이대로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정신을 잃어갈 때마다 이대로 영원히 깨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하지만     


 공!     


 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희미해지던 정신이 돌아왔다. 참고 있던 숨이 튀어나오며 기침이 나온다. 눈이 빠질 것처럼 따갑고, 입에서는 피와 침이 섞여서 걸쭉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괜찮냐? 채수는 가끔 걱정 어린 눈으로 말하곤 했는데, 나는 이런 말에 괜스레 위로를 받는 것이다.      


 미친 새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왕따로 살아간다는 건, 공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런 것이다. 채수라는 존재는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끔찍한 존재지만, 가끔은(정말 가끔이지만) 친구로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온종일 맞다가도, 심부름을 하다가도, 채수의 눈치를 살필 때도 이 녀석의 괜찮냐? 라는 말 한마디에 그만,     


 눈물이 핑 - 하고 도는 것이다.     


 채수에게 맞은 날이면, (그래 그러니까 거의 매일) 쉽사리 집에 들어갈 수 없다. 몸에 난 상처는 그렇다 치고 얼굴에 난 상처를 엄마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진 않았다. 그래서 엄마가 잠들 때까지 학교를 방황하곤 했다. 해가 떠 있을 땐 죽을 만큼 싫은 학교지만, 밤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누군가는 무섭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나에게는 편안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 채수가 불러서 나가는 일도, 맞는 일도, 눈치를 보는 일도 없다. 텅 비어버린 학교야말로 내가 학생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나는 반으로 들어가서 내 자리에 앉는다. 교실 안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이 부는 소리나 풀벌레가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세상이 멈춘 것처럼 학교는 적막하다. 나는 책상에 엎드린다. 채수에게 맞았던 곳들이 욱신거리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시계를 쳐다보니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간다. 그리고 창밖을 쳐다보았다. 가게들이 문을 닫으며 거리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거리가 어두워질수록 밤하늘에는 숨어있던 별들이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 TV에서 별들은 서로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해준 게 기억이 났다. 눈으로는 1cm도 안 되는 거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를 몇백 바퀴나 돌 수 있을 만큼 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채수의 말대로,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된다면. 나는 우주에 홀로 떠 있는 별이 되고 싶다. 그렇다면 왕따 같은 걸 당할 일도 없을 테니까. 채수가 부르는 일도, 다른 애들의 눈치는 보는 일도, 무시당하는 일도, 우는 일도, 담담한 척할 필요 없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할까?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내 고민을 말할 수 있을까? 밥을 먹고, 얘기하고, 산책하고, 여행을 다니고, 좋아하는 사람도 생기고, 연애도 하고, 그렇게 졸업을 하고, 대학을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런 평범한 삶을 나는 줄곧 꿈꿔왔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미래를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내일은 찾아오니까. 학교에 가서 맞고, 무시당하는 일밖에 상상할 수 없으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책상 위로 굵은 눈물이 뚝 – 뚝 – 떨어진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를 빠져나간다. 교문을 나서자 익숙한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집 방향으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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