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3
학교는 어떠니? 엄마는 계란말이를 베어 물며 말했다. 형식적인 질문이었다. 좋아요. 나 역시 형식적으로 대답한다. 공부는? 엄마는 말을 하면서도 눈은 시계와 TV를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한 달 뒤에 유성우가 내린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었다. 할만해요. 나 역시 그녀를 똑바로 보지 않는다.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엄마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노력하며 밥을 먹는다. 힘든 건 없고? 네······. 뭐. 엄마는 슬쩍 나를 쳐다본 후에 남은 밥을 싹싹 긁어서 입에 넣는다. 그리고 싱크대에 그릇을 놓아두고는 겉옷을 입는다. 엄마는 내 머리를 몇 번 쓰다듬은 후에 다녀올게. 라는 말과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남은 밥을 대충 입에 욱여넣는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가방을 챙기고,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정리한다. 채수에게 맞은 자국들은 앞머리와 옷들로 잘 가려져 있는지 확인했다. 감쪽같았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에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해서도 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저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거나, 엎드린 채 자는 척을 하는 것이 내 학교생활의 전부다. 그렇기에,
공!
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채수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손을 까딱거리며 가까이 와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채수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어디론가 나를 끌고 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급식실 근처의 소각장이었다. 말이 소각장이지 채수와 그의 패거리들의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몇 명이 담배를 피고 있었다. 채수는 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나를 밀었다. 벌써부터 옅은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공! 뭐 하나만 부탁하자. 채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곁에 있는 녀석들도 똑같은 표정이었다. 네가 가져와 줬으면 하는 게 있는데······ 뭔지 맞춰볼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겁먹지 말고 임마. 채수는 킥킥거리며 웃어댔다. 그 왜 마스터키 있잖아. 수위가 차고 다니는 거. 그거 좀 가져와 줄래? 네가 알다시피······ 내가 겁이 좀 많잖냐. 친구 좋다는 게 뭐야. 뭐 때문에 그러는건데······? 옥상 문 좀 열려고. 가져오기만 하면 나머진 우리가 알아서 할게. 채수는 옥상 열쇠를 복사해놓으라는 말도 덧붙였다. 열쇠를 훔치라는 말에 머릿속은 한바탕 난리가 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금요일까지 가져오라고 말했다. 오늘은 수요일이었다. 머리를 정리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채수를 쳐다보자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을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금요일까지 가져오지 못하면 죽도록 맞을 것이다. 그래 도둑질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이건 훔치는 게 아니다. (아니라고?) 그래, 잠시 빌린다는 표현이 맞는 거 같았다. 잠시 빌렸다가 복사만 하고 돌려놓을 거니까, 아무런 문제 없을 것이다. (문제가 없을 리가 있냐고) 무엇보다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중간에 들키는 것이었다. 징계는 물론이고, 결국 열쇠를 못 가져왔으니, 채수에게 따로 징계를 받을 것이 뻔했다. 아······ 몰라 몰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열쇠를 훔쳐서, 복사하고, 그대로 돌려놓으면 된다. 징계를 받는 거나 들키는 건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수위실에 들어가는 거다. 수위아저씨는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수위실은 지나가다가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매번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아저씨가 자리를 비우는 일은 드문 것 같았다. 나는 근처의 풀숲에 앉아서 수위아저씨가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 그가 나오면 몰래 수위실에 들어가서 열쇠를 찾을 생각이었다. 근처의 열쇠집이 아홉시에 문을 닫았기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내 계획과는 달리 그는 한밤중이 되어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초조함에 짜증이 몰려왔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금요일을 생각했다. 채수에게 죽을 만큼 맞을 걸 생각하니 몰려오던 졸음조차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되면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위실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인 후에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조금 전보다 힘을 주어서 문을 두드렸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손잡이를 잡고 살짝 돌려보았다. 덜컥 – 하는 소리와 함께 수위실의 문이 열렸다. TV와 불이 켜져 있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자리에 없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나는 문을 닫고 수위실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마음은 점점 급해졌다. TV 근처에 있는 난방을 들어올렸을 때, 묵직한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열쇠 뭉텅이가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긴장과 기쁨이 섞여서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부푼 가슴을 진정시키며 열쇠를 주머니에 넣으려던 찰나에
덜컥 –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