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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19. 2024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4)

episode. 4

4          


 여기서 뭐하는 거냐. 뒤를 돌아보니,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채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는데 몸에서는 희미하게 기름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는 모자를 벗으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다시 왜 여기에 있는지를 물었다. 아무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점점 그와 거리가 좁혀질수록 몸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화······.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최악이다. 세 살짜리 애한테도 안 통할 변명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변명에 넘어갈 사람이 있을 리가·····. 그러냐?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정리하며 오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화장실은 저기다. 그는 옷가지를 팔에 걸친 채로 싱크대 옆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가슴이 쿵쾅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로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열쇠를 훔치려다가 오줌이나 싸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최악이다. 그의 오묘한 미소가 아직도 눈앞에 멤돌고 있었다. 알고도 모른 척 한 걸까? 정말로 몰랐던 건······?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지금 내가 화장실에 있는 새에 학주와 통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가만, 내가 명찰을 달고 있었던가? 얼른 옷을 확인했으나, 다행히도 명찰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그는 아직 나의 이름을 모른다. 인상착의만으로 나를 알아챌 선생은 이 학교에 없다. 남은 일은 그가 내 얼굴을 외우기 전에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뿐이다. 심호흡을 몇 번 한 뒤에 문손잡이를 돌렸다. 가······. 감사했습니다. 그와 눈이 마주칠세라 빠르게 수위실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화장실 건은 조용히 해결된 모양이었다. 그 사건 이후론 수위실 근처에만 가도 심장이 쿵쾅거렸기 때문에 다시 수위실에 들어가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그렇게 금요일이 되었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채수의 호출이 있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 녀석의 손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나는 침을 꼴깍 – 삼켰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에 눈앞에 보이는 손을 향해     


 미안.     


 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짝 - 하는 소리가 들렸다. 뺨이 얼얼했다. 기대도 안 했다. 채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안에서 옅은 피 맛이 느껴졌다. 맞아도 한참을 더 맞아야 할 일인데, 채수는 더 이상 때리지 않았다. 한 손에 담배를 든 채로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녀석이 내민 것은 커다란 돌이었다. 맡은 일엔 책임을 져야지. 채수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눈이 따가운 것도 잊은 채 그가 건네준 돌을 응시하고 있다. 오늘 안에 문 열어놔. 뒤지기 싫으면. 채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홀린 듯이 뛰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복도를 미친 듯이 뛰었다. 어느새 나는 옥상으로 통하는 문 앞에 서 있다.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고민할 시간은 없다. 이거마저 실패한다면 다음은 없었다. 양손으로 돌을 쥔 후에 있는 힘껏 자물쇠를 내려쳤다.

      

 깡 -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자물쇠는 미동도 없었다. 자물쇠를 내리친 반동은 그대로 내 손목을 타고 올라왔다. 손목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심호흡을 한 후에 다시 돌을 들고 자물쇠를 내려쳤다. 다시,     

 

 깡 -     


 깡 -     


 깡 -     


 깡 -     


 깡 -    

 

 깡 -    

 

 하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어느새 내 주변에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미쳤나 봐. 뭐 하는 거야? 자살이라도 하는 거 아냐? 미친놈. 누가 좀 말려. 야, 말리긴 누가 말리냐. 쌤 좀 불러 누가. 주위의 시선은 전부 나를 향하고 있다. 누구 하나 말리려는 사람도 없었다. 어느새 자물쇠는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세 번, 아니 두 번 정도면 완전히 부서질 것 같았다. 더이상 돌을 쥐고 있기도 힘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팔이 떨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돌과 자물쇠에는 내 손에서 난 피가 묻어 있었다. 남은 힘을 짜내서 돌을 높이 들었다. 손목을 비트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왔다. 작게 비명을 지르며 돌을 놓치고 말았다. 둔탁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니 담임이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서 있는 녀석들에게 얼른 반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내 팔목을 잡았다. 얘기 좀 하자.     


 내가 도착한 곳은 복도 끝에 있는 상담실이었다. 그녀는 의자에 앉으라고 말한 후에 보리차 한 잔을 내밀었다. 그리고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도대체 왜 그런 거니. 적당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너 이런 짓 하는 애 아닌 거 알고 있어. 누가 시킨 거니? 혹시, 자살······ 같은 건 아니지? 그녀의 얼굴이 차츰 어둡게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누가 괴롭히는 거지?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손에 난 상처를 누르는 바람에 자연스레 표정이 찡그려졌다. 그제야 담임은 내 손의 상처를 발견했다. 그녀는 얼른 양호실부터 가보라고 말했다. 언제든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찾아와. 꼭 도와줄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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