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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26. 2024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6)

episode. 6

6          


 달그락 – 거리는 소리에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왔다. 은은하게 퍼지는 밥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눈을 뜨자 낡은 천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일어났구나.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목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낡은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로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수위아저씨였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일어날 수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살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병원은 꼭 가봐라. 성한 곳이 한 군데도 없더라. 나는 그제야 상처에 약이 발라져 있는 것을 깨달았다. 소각장 쪽에 쓰러져 있더구나. 싸운 거냐? 싸웠냐는 말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참. 요즘 애들은. 그는 표정을 찡그리며 혀를 찼다. 아저씨는 나에게 물 한잔을 내밀었다. 저번에 여기 들어왔던 애 맞지? 그때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잠시 기다릴 수 있겠니? 내가 선생님께 연락을······.     


 아저씨.      


 괜한 오지랖 부리지 마세요. 저는 보시다시피 왕따예요. 친구도 없고요. 선생님도 아무 관심 없으세요. 부모님도 마찬가지고요. 학교에서 저한테 관심 있는 건 채수밖에 없어요. 그 녀석한테 찍히고 나서는 아무도 저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눈에 퍼런 멍이 들고 상처가 있는 얼굴로 수업을 듣는데도 무슨 일 있냐, 괜찮냐는 소리 한 번 들어본 적 없어요. 근데 사람이 참 웃기죠. 내가 아무 말도 안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눈에 보이는 행동을 한 번 했다는 이유로 괜찮냐는 둥, 얘기해보라는 둥 말을 한다는 게. 담임이 그러더라구요. 언제든 찾아와도 좋다고. 어른들은 왜 그러는 건가요? 왜 일이 이 지경이 돼서야, 도와준다느니, 힘든 걸 말해보라느니, 모든 걸 다 해줄 것처럼 말하냔 말이에요. 사실은 아무 관심 없으면서. 그런 말로 이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다 알고 있잖아요. 근데 아저씨. 진짜 짜증 나는 게 뭔지 아세요? 그런 얄팍한 친절 속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나를 보는 거요. 나아지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런 친절에 기대야만 하는 제 마음을 생각해본 적 있냐구요. 그냥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면 편했을 텐데. 평소처럼 그냥 내버려 뒀더라면 더 비참해지는 일은 없었잖아요.     


 아저씨.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하루에도 몇천 번씩 채수의 얼굴이 떠올라요. 버스 기사의 얼굴이, 무거운 짐을 지는 할머니의 얼굴이, TV 속 연예인들의 얼굴이, 엄마의 얼굴이 그리고 거울에 비친 내 모습까지. 채수의 얼굴을 하고선 내 이름을 불러요. 야, 공! 웅크려. 그렇게 저는 웅크려요. 있는 힘껏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져요. 앞을 보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 현실을 보고 있지 않아도 되니까요. 제가 가장 두려운 건 웅크리는 것도 채수에게 맞는 것도 아니라, 고개를 들고 이 좆같은 현실을 쳐다보는 일이라고요. 그런데 어른들은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이겨낼 수 있다고, 살아가야 한다는 소리만 내뱉잖아요. 아저씨. 인간은 꼭 무엇인가를 이겨내야만 하나요? 인간은 꼭 살아가야만 하는 거냐고요. 제발······. 저한테 가르쳐 주세요. 어른이라면. 사람이라면······.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서럽게 울고 있었다. 숨이 넘어갈 정도로 크고 서럽게 울었다. 그는 한참을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꼭 안아주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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