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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Dec 31. 2024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7)

episode. 7

7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내가 왕따를 당한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다. 여전히 내 이름은 공이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결국엔 구석에 박혀버리는 공이다. 누군가 내 삶에 대해서 깊숙이 파고들수록 피해를 보는 건 나였다. 깊으면 깊을수록 채수의 폭력도 심해진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다. 나는 공이니까. 공은 말하지 못하니까.     


 채수에게 맞은 날이면 이상하게 수위아저씨와 마주쳤다. 그는 나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수위실로 부르곤 했다. 그리고 나를 앉혀놓고는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얼굴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긴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선생님께 말하거나 채수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와 있는 시간은 비교적 편안했다. 밥이라도 먹고 가지 그러니. 상처에 약을 바르다 말고 그는 말했다. 그가 약을 발라준 지 일주일 정도 됐을 무렵이었다. 집에 일찍 들어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었다. 없었지만, 예의상 조금 뜸을 들이다 없다고 말했다. 작은 상을 펼치고 우리는 밥을 먹었다. 언제든 먹으러 와도 된다. 그는 어느새 밥을 반 공기나 비워버린 후였다. 네. 라고 나는 대답했다. 채수에게 맞을 때면, 그와 함께 밥을 먹었다. 반찬은 된장찌개와 김치 혹은 김치찌개와 김치가 전부였다. 그는 밥상을 차리곤 매번 TV를 켰다. 처음에는 예능이나 드라마 채널을 틀어주더니 언젠가부터는 뉴스 채널로 고정되어 버렸다. 그는 뉴스를 보며 혀를 차거나 눈을 찌푸리곤 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유성우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다. 몇백 년 만에 처음. 엄청난 규모. 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띄워져 있었고, 천문학자들과 일반인 대상으로 한 인터뷰도 심심찮게 튀어나왔다. 뭐 저런 거 가지고 저렇게 난리인가 하고 옆을 보면, 아저씨는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은 읽어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뉴스에서는 이 주 뒤에 유성우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보도했다. 이 주 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뒷정리는 내 몫이었다. 그가 시킨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설거지하는 동안 그는 옷은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는 설거지가 끝날 때쯤 돌아와서 공구 상자를 챙겨서 나가거나 다시 앉아서 TV를 봤다. 하루는 설거지가 끝나는 걸 기다리더니 그는 같이 나가 볼 것을 권했다. 나는 얼떨결에 수위실을 나와서 그와 함께 학교를 순찰했다. 곳곳에 있는 쓰레기를 줍고, 부서지거나 문제가 있는 곳을 확인하는 그런 일이었다. 매일 이렇게 확인하는 거예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든 사람이든 자주 들여야 봐줘야 하는 거거든. 그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에 채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트럭에 부딪혔는데, 의식불명이라고 하더라. 담임은 착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한아름사랑병원. 칠판 구석에는 채수가 있는 병원의 이름이 적혔다. 그리고 병문안을 하러 갈 사람은 반장과 얘기하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쉬는 시간이 되자 반장은 병원에 같이 갈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야, 병문안을 뭐하러 가냐? 침묵을 깬 것은 맨 앞줄에 앉은 녀석이었다. 시선이 집중되자 그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걔 때문에 피해 본 사람이 한둘이냐고. 이번에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이었다. 그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나둘씩 입을 열어 채수를 욕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어설픈 침묵이 찾아왔다. 반장은 알겠다며 자기 혼자 가겠다고 말했다.     

 채수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은 수천 번 생각했던 일이었다. 아니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기뻐해야 할 일이 맞는데도, 마냥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건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나를 괴롭히던, 아니 삶의 끝자락까지 나를 내몰았던 녀석이 의식불명이 돼버렸는데도 기분이 좋긴커녕 찜찜한 기분이 돼버린다는 것은 말이다. 이제 앞으로 나를 공! 이라고 부를 녀석은 없다. 웅크려야 할 일도, 맞을 일도 없어졌는데······. 참,      


 이상한 일이지?      


 응? 내 옆에는 어느새 반장이 서 있었다. 다른 녀석들 말이야. 그 녀석이 사라지고 나니까 말 트인 거. 예전에는 네가 옆에서 맞고 있어도 아무 말도 안 하던 놈들이 자기들이 더 난리잖아. 정작 너는 아무 말 안 하고 있는데. 안 그래? 반장은 나를 슬쩍 쳐다보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오전 수업이 끝이 나고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점심을 먹고 교실로 돌아와서 자리에 앉았다. 채수의 호출이 있어야 할 시간인데도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위에는 얘기하거나 책상에 엎드린 채 자는 녀석들뿐이다. 창밖에는 축구와 산책을 하는 녀석들로 가득 차 있다. 평화롭다. 반장의 말대로 참 이상한 일이다. 채수가 의식불명이 됐는데도, 학교는 평화롭다. 어제와 달라진 건 없었다. 채수가 없든, 내가 없든, 누가 없든 간에 학교는 평화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와 달라진 점이라고는 내 감정밖에 없다. 희미해지다가 울렁거리는 이 복잡한 기분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수위아저씨가 떠올랐다. 아저씨라면 적어도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수위실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는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나를 보더니, 점심을 먹으려고 하던 참이라고 말했다. 들어오거라. 나는 그를 따라 수위실로 들어갔다. 어쩐 일이냐. 다친 것 같진 않아 보이는데.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그는 말했다. 채수가 교통사고를 당했대요. 그는 내 말을 듣고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의식불명이라 앞으로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대요. 너한테는 다행인 일이구나. 너를 때리던 녀석이 사라져버렸으니. 나는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렇죠. 좋아해야 하는 일인데, 사실 기분이 이상해요. 찜찜하고 뭔가 울렁거리는 그런 기분이 들어요.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게 왠지 분해서······. 아저씨는 내 말을 듣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남의 불행을 보고 마음껏 기뻐하는 사람은 없어. 그게 아무리 너에게 있어서 악몽 같은 존재였어도 말이지. 잠깐의 기쁨과 통쾌함은 찾아오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잠깐일 뿐이야. 그 후에 찾아오는 건 공허함과 허무함 뿐이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저씨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너는 채수에게 맞을 때, 무슨 생각을 했니. 왜 하필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채수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사라지니까 어떠니. 사실······.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너는 채수가 불행해지기를 바란 게 아니잖니. 그 녀석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면, 나를 찾아오는 일도 없었겠지. 네가 진심으로 채수에게 바랐던 건 어떤 거였니.      


 저는······.     


 목이 잠긴 것 처럼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물 한잔을 내밀었다.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 네 감정에 솔직하면 되는 거니까. 물을 한 모금 삼킨 후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매일 생각했어요. 채수가 미안하다고 말을 하고 반 친구들도 선생님도 그동안 미안했다고 사과를 하는 모습을요. 근데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으니까. 채수가 사라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네가 불행한 일을 겪었다고 해서 꼭 남이 불행하기를 바랄 필요는 없다. 남이 불행해지고, 복수가 성공한다는 게 전부 완벽한 결말로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 이제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아니라 네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야. 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채수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웃으며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래, 얼른 가보거라. 따뜻한 기운이 그의 손을 타고 몸속 깊숙이 전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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