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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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참 별난 애다. 반장은 옆에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는 속도 없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채수가 입원한 병원은 학교에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반장은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려서 오렌지 음료수가 든 박스 하나를 계산대에 올렸다. 빈손으로 가긴 좀 그렇잖아. 계산을 끝낸 후에 그녀는 손을 내밀었다. 너도 좀 보태. 나만 병문안 가니? 나는 그녀의 말에 얼떨결에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만원을 꺼내서 그녀에게 건넸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일인실 앞이었다. 채수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문을 열자 그의 어머니가 보였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울고 있었던 것처럼 볼에는 눈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마자 고맙다는 말을 연신 해대었다. 반장은 그녀에게 음료수를 내밀었다. 정말 고마워요. 그녀의 눈에 다시 눈물이 맺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은 후에 사과를 내밀었다. 미안해요. 대접할 게 없어서······.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며 얼른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반장은 채수를 한 번 봐도 되는지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채수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침대 위에는 온몸이 붕대로 묶인 남자가 누워 있었다. 채수빈이라는 글자를 보고 오지 않았다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는 그런 채수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수빈이가 오토바이를 탔다고 하던데, 나는 그것도 몰랐어요. 어느새 그의 어머니가 우리 뒤에 서 있었다. 매일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오면, 항상 자고 있었거든요. 생각해보면······. 관심이 없었어요. 애가 뭘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 사는지. 그래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말보다 애가 오토바이를 탔다는 말이 더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기억하는 수빈이는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아이였거든요. 오토바이니, 일진이니 하는 얘기가 남의 나라 얘기 같더라구요. 의식불명이라는 얘기를 듣고 수빈이를 바라봤는데, 여기 누워 있는 아이가 수빈이가 맞을까.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녀는 말을 끝맺기도 전에 울음을 터트렸다. 반장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잠시 잡아주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돌아갈 무렵에 그녀는 우리의 이름을 물었다. 수빈이가 깨어나면 말해주고 싶어서요. 먼저 입을 연 건 반장이었다. 이희진이에요.
박······
평재에요. 채수의 어머니는 우리의 이름을 몇 번 입으로 중얼거렸다. 둘 다 너무 이쁜 이름이네요. 고마워요. 오늘 와줘서. 가끔 찾아오겠다는 말을 한 후에 병실을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나서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학교 근처에 도착해서도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난 이쪽이라서. 반장은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박평재.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내일 봐. 반장은 손을 흔들었다. 응. 이라고 말하며 나 역시 손을 흔들었다.
박평재.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준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반장의 말대로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채수가 의식불명이 됐고, 그를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병문안을 가서 그의 어머니를 만나고, 또,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날이라니. 정말 말 그대로 이상한 일의 연속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전보다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이희진. 나는 반장의 이름을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