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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맹욱 Jan 06. 2025

그래도 심장은 뛰니까 (完)

episode. 完

9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거 알고 있냐? 채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내 머릿속을 울리다가 이내 사라진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가끔 채수에 관한 꿈을 꾼다. 꿈속의 채수는 더이상 나를 공!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꿈에서 깨고 나면 그가 했던 말이 내 주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유성우의 시기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뉴스를 넘어 이젠 학교에서까지 유성우에 관한 얘기를 들어야만 했다. 누구랑 보러 간다느니, 자리를 예매했다느니 같은 소리를 들으며 내 머릿속에서는 채수가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사람은 죽으면 별이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말을 곱씹다보니 내 머리에서는 한 가지 의문점이 피어올랐다. 그럼 별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뭐 저렇게 난린가 몰라. 옆을 쳐다보니 어느새 반장이 서 있었다. 그녀는 내 시선을 조금 피하며 말을 이었다. 아니. 뭐, 미신이잖아. 소원을 들어준다느니 하는 거. 유치하지 않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를 조금 노려본 후에 자리로 돌아갔다.     


 채수가 사라졌어도 여전히 학교가 끝나면 수위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저씨와 저녁을 먹고 가끔은 학교를 돌아다니며 고장난 곳을 손보곤 했다. 무슨 일 있냐. 그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밥을 한 숟갈도 뜨고 있지 않았다. 아······. 아니에요.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요즘 학교는 어떠냐. 뭐······. 괜찮아요. 이제 채수도 없고, 맞는 일도 없으니까. 그러냐? 표정이 좋지 않길래, 무슨 일 있는가 해서 물어봤다. 아저씨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망설인 후에 입을 열었다. 그게, 최근에 꿈을 꾸거든요. 채수의 목소리가 들리는데, 매번 같은 말만 하고 사라져 버려요. 채수가 뭐라고 하든?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고······. 아저씨도 들어본 적 있죠? 채수가 때릴 때마다 했던 말인데, 뭔가 그 말이 자꾸 꿈에 나와요. 그래서 그냥 궁금해졌어요. 정말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되는 걸까 하고. 그리고 그 별이 죽어서는 뭐가 되는 건지. 아저씨는 밥을 먹다 말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왜, 유성우도 내린다고 하고 해서. 그냥 궁금했어요. 아저씨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보고 싶은 거구나. 유성우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하도 얘기를 하니까. 궁금해서. 그는 남은 밥을 입에 넣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도 이 시간에 찾아오거라. 유성우 보기 전에 밥은 먹어야지.   

  

 다음 날 학교가 끝나자마자 수위실로 달려갔다. 간단하게 밥을 먹고, 아저씨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여기라면 아주 잘 보일 거다. 아저씨는 계단에 놓인 책상과 의자를 하나둘씩 치우기 시작했다. 나도 그를 도와 책상과 의자를 정리했다. 삼십분도 되지 않아서 계단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옥상 문에는 전보다 더 커다란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그는 나에게 열쇠를 내밀었다. 덜컥 – 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철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인 것은, 쏟아질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이었다.      


 아저씨와 나는 옥상 한복판에 앉은 채로 하늘을 보고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자신만의 빛을 내며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네가 했던 말 말이다. 침묵을 깬 건 아저씨였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거. 나는 그 말을 믿는 사람이거든.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나한테 해줬던 얘기였어. 매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서 별이 된다며,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 크고 밝은 별이 된다고 말했었단다. 그러다가 그 별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별똥별이 된다고 말이야. 그러면서 반짝거리는 별을 가리키며, 저건 세종대왕 별이고, 저건 이순신 장군의 별이라며 가르쳐 주곤 했었단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 아마 일을 그만둔 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겠지.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밤하늘에 희미한 빛을 내며 떠 있는 별 하나가 보이더라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별이 아버지 같은 느낌이 드는 거야.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어서 저렇게 희미한 빛을 내고 있구나. 왜 우리 아버지는 죽어서까지 저렇게 희미한 빛을 내는 걸까. 괜스레 울적해지기까지 했단다.     

 

 그런데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까 조금 알 거 같더라고. 살다 보면 어느샌가 우리는 이름을 잃어버린단다. 학생, 김부장, 이대리, 선생님, 아가씨, 총각. 아저씨, 아줌마. 나를 부르는 호칭은 정말 많은데, 정작 내 이름 석 자를 불러주는 사람은 점점 더 적어지게 돼. 나 역시 죽으면 별이 되겠지. 하지만 이제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하는 이는 너무 많이 사라져 버렸어. 이순신 별이나 세종대왕 별처럼 밝은 별이 되긴 틀렸을지도 모르지.      


 제가,      


 기억할게요. 아저씨의 이름이요.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제 이름은 박평재에요. 박, 평, 재. 아저씨. 이름을 가르쳐 주세요. 수위나 아저씨 같은 호칭이 아니라 진짜 이름이요.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진다. 하나둘씩 떨어지던 별똥별은 어느샌가 쉬지 않고 떨어지고 있었다. 유성우가 내린다. 별들은 폭포처럼 우리 머리 위를 지나며 사라진다. 많은 이들이 사라지고 잊혀진다. 가르쳐 주세요. 아저씨의 이름이요. 제가 약속할게요. 아저씨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고요. 그는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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